 등산(登山)과 입산(入山)2009-07-20 10:54:09
법무사 최정욱
고상돈을 아십니까?
제주도출신 젊은 산악인 고상돈이 1977. 9. 15.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세계에서는 8번째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8848미터의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 태극기를 꽂았을 때 전 국민이 열광하면서 자기 일처럼 좋아하던 기억이 납니다.
산을 좋아하던 고상돈은 다음 다음해인 1979. 5.29. 북미 최고봉이라는 6191미터의 알레스카 매켄리 봉을 등정하고 하산도중 자일사고로 추락 사망하여 우리를 안타깝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영국의 탐험가이자 등산가로 세계최초로 에베레스트 산에 오른 영국의 조지 말로리 경은 “왜 산에 가느냐”고 묻는 기자에게 “거기 산이 있으니까’ 라고 그럴 듯 하면서도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지금이야 유명한 말이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하도 집요하게 달라붙는 기자들이 귀챦아서 퉁명스럽게 내 뱉은 말이 “-거기 산이 있으니까-” 였습니다.
산이 좋아서 산을 찾는 산 사람이 산에서 죽는 것은 수저로 밥을 떠 먹는 것만큼이나 이상할 것이 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사실은 조난소식을 접할 때마다 안타까운 심사를 금할 수 없습니다.
지난 10일 우리 고장 부안출신의 여성 산악인 고미영씨가 세계에서 아홉번째로 높다는 8126미터의 히말리아 낭가파르바트 정상를 오른 후 “남은 3개봉도 안전하게 등정하여 대한민국 여성의 기상을 전 세계에 떨치겠습니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하산 도중 실족으로 추락 사망하였다는 비보를 접하고 심한 충격에서 벗어 나기가 힘들었습니다.
여성 최초 8000미터급 14좌 등정이라는 기록을 세우기 위하여 마음이 급했던 탓이였을까 아니면 많은 산행 경험에 의한 자신감에 잠시 긴장의 끈을 놓은 탓이였을까, 이도 저도 아니면 설산(雪山)을 다스리는 신이 내린 가혹한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그가 추락사를 했다는 비보를 접하던 날은 하늘도 슬픔을 같이 하는지 하루 종일 억센 장대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것도 모르고 우리들 몇몇은 전라도와 경상도, 충청도를 어우르고 있다는 3도봉을 다녀와서는, 무사 산행에 좋아라 하고 술잔을 돌렸습니다.
나는 산을 좋아하면서도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등산일정이 잡히고 산행을 약속하면 그때부터 무사히 산행을 마치고 귀가할 때까지 걱정을 안고 사는 사람입니다. 비나 눈은 오지 않으려나, 심한 바람은 불지 않을까, 나는 물론이고 혹 일행 가운데에 잠시의 방심으로 나무나 돌부리에 걸려 다치지나 아니할 까 하고 말입니다. 해발 100여 미터에 미치지 못하는 월명산의 점방산을 오를 경우에도 꼭 등산화를 챙겨 신고 나섭니다.
이것은 겁이 많아서라기 보다는 산을 어려워하는 겸손과 지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등산(登山)이라는 말도 아끼고 대신 입산(入山)이라는 말을 즐겨 씁니다. 감히 산을 밟고 오른다는 것이 불경(不敬)스러워서 입니다. 등산이라는 말은 적극적으로 산을 지배하고저하는 서양인들에게 들어 맞는 말이고, 자연 속에 자기를 묻혀 보려는 동양인들의 체질에는 입산이라는 말이 한결 제격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무리를 해가면서라도 꼭 산의 정상에 올라가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저 주변 경관도 구경하면서 힘 닿는 데 까지 오르다가 도중에 하산하면 어떻습니까? 양반이 상놈되는 것 아니지 않습니까?
수 년전, 지리산 천황봉에 오를 때 일입니다. 어떤 젊은 이가 큰 소리로 “나 천황봉 정복했다”고 핸드폰으로 자랑삼아 누군가에게 연락하는 것을 보고 나무란 적이 있습니다. “ 자네가 천황봉을 정복한 것이 아니라 천황봉에 오를 수 있도록 허락 받은 것이 아니냐”고 말입니다.
자만과 설마는 산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장 금기하여야 할 덕목입니다.
이번 고미영씨의 사망에 깊은 애도를 표하면서 못다 피운 14좌 완등의 꿈을 우리들 가운데 누군가가 머지 않은 장래에 이루어 내리라 확신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군산미래신문 (km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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