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불공단 전봇대 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2008년 1월 중순경인가? 이명박대통령이 당선자시절 인수위 간사회의에서 공무원의 안일과 복지부동과 탁상행정을 꼬집으면서 한 이야기 말입니다.

“아마, 지금도 그대로 있을거야. 내가 2년전에 대불공단 시찰시 화물자동차 기사들이 다리 옆에 있는 전봇대 때문에 차량운행에 어려움이 많아 이를 옮겨 달라고 5년간이나 그렇게 사정해도 관계부처 어디에서도 묵무부답이라더라”

대통령당선자가 지금 당장 뽑아내라고 한 것도 아니고 예를 들어 이야기한 이 한마디에 산업자원부 소속 서기관과 사무관이 현장으로 달려가고 전남도청과 영암군 공무원이 동원되고 한전 기술자 7명이 5시간에 걸쳐 부랴부랴 전봇대 2개를 뽑아냈습니다.

그것도 비가 내리는 가운데 일어난 작업이라 이를 두고 ‘빗속의 전봇대 작전’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이 말은 한때 탁상행정과 복지부동을 일삼으며 몸보신으로 일관하는 공무원들의 일처리를 두고 전봇대 행정이라고 비난하는 유행어가 되기도 했습니다.

다수의 일 잘하고 친절한 공무원들은 이 말을 들으면서 참 억울해 하기도 했을 겁니다.

엊그제 일입니다.

손주의 출생신고를 하기 위해 시청을 찾았습니다.

3년전에 첫 손주를 보았을 때도 출생신고를 하기 위해 시청을 찾았다가 담당직원과 다투던 기억이 떠 올라 시청 민원실을 찾기 전부터 이번에는 또 무슨 트집이 잡혀 시비를 하게 되지나 않을까 내심으로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출생자의 부모가 신고인이 되어야 하는데 동거하지 않는 할아버지는 신고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담당공무원의 주장이고, 출생신고라는 것은 제 삼자와 이해관계가 없는 보고적 신고이기 때문에 출생 그 자체만 입증이 되면 접수 처리하면 될 터인데, 더구나 할아버지가 친 손자의 출생신고 조차 못한데서야 말이 되느냐는 것이 내 주장으로 시비가 된 것입니다.

인구를 한사람이라도 더 늘려야 한다는 국가나 시정방침과는 다르게 까탈을 부리는 저의가 무엇인지, 솔직히 말하여 나는 그 공무원이 다른 부서로 이동하고 없기를 바랐습니다.

아들 내외가 맞벌이를 하는 처지인지라 틈을 내기가 쉬운 일이 아니라서 이번에도 내가 나서서 대신 출생신고를 하러 가기는 가야겠는데 또 시비 할 일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는 신고인 적법 여부까지 가기도 전에 트집(나는 굳이 이를 트집이라고 본다)이 잡혔습니다.

출생자의 이름이 없어서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출생신고는 출생한지 30일 이내에 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하기 때문에 미쳐 이름을 짓지 않아 명 (名) 미정(未定)이라고 기록했던 것이고 천천히 시간을 두고 좋은 이름을 작명하여 추완(追完)하겠으니 접수 해 줄 것을 간청함에도 막무가내였습니다.

“그럼, 각하(却下)를 해주시오.”

내 말에 담당자는 몹시 기분이 상했나 봅니다.

출생신고서를 제 앞으로 던지듯이 밀어내면서 “ 손님, 출생장소가 누락되었으니 적어주세요”

저 역시 조금은 흥분된 상태이기 때문에 좋은 말이 나갈 리가 없었습니다.

“나는 늙고 눈이 나빠서 잘 보이지 않으니 병원에서 발행한 출생증명서를 보고 좀 써 주시오”

손님이라? 그렇다. 나는 이 고장 군산에서 낳고 자라 환갑,진갑을 넘긴 나이가 되도록 군산을 떠난 적이 없는 군산시민이지만 늘 주인?(공무원)과는 대립적 관계에 있는 손님대접만을 받아 온 것이란 말인가!

시청문을 나서는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아마 담당자의 마음도 유쾌하지는 않았으리라 믿습니다. 나는 이 난을 통해서 담당자의 행위를 비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민을 대할 때 손님이 아니라 주인으로 대접해 줄 줄 아는, 똑똑한 공무원보다 친절한 공무원을 만나고 싶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아버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상냥하게 웃으며 다가오던 은행창구 직원의 모습이 자꾸 눈앞에 아른 거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