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인명사전이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에서 8년여에 걸친 선정 작업 끝  에 발간 공개되었다.

때맞추어 친일인사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놓고 여기저기서 진통을 겪고 있다.
 
일본제국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지 60여년이 훨씬 지난 오늘도 우리의 역사의식은 아직도 그 오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우리고장이 배출한 소설가 백릉 채만식 선생도 사전에 실렸다.
 
백릉에 대한 평가는 일찍부터 친일 문제에 대한 논란이 있어 왔다.

소설 ‘탁류’를 통해 식민지 압제 속에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에 대하여 우리 군산지역의 향토 냄새 물씬 풍기는 시대성을 풍자적으로 서술해낸 문학적 성과를 거두었다는 평가와 함께 여러 편의 친일 성향의 글을 발표하여 민족의식을 훼손하였다는 평가 또한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 고장의 걸출한 한 문학인 백릉을 사랑하며 동시에 그의 민족의식의 훼절을 안타까워한다. 역사는 사실 기록의 작업이고 그 결과이다.

누구도 이를 피해가거나 숨길 수 없는 엄중한 사실이다.

비록 그가 친일성향의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시대 상황과 그 스스로 사죄의 글로 용서를 구하고 있음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그를 역사의 뒤안에 숨기거나 그 사실을 미화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 시에서는 문화사적 사료 발굴과 역사 재현의 일환으로 채만식 문학관을 짓고 문학상을 제정하여 백릉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사업에 상당한 정성과 예산을 들여오고 있다.

그러나 많은 시민들이 백릉의 문학정신을 기리고 그의 아픈 삶을 가슴으로 포용하면서도 우리 시가 기대하는 만큼 호응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백릉문화사업은 채만식 문학관을 중심으로 한 향토문화 발굴 홍보 사업과 백릉 문학상 시행을 통한 백릉문학 연구 선양 사업이다.

현재 이 사업들은 시설 운영과 관리, 문화콘텐츠 개발, 작품 발굴, 예산 운용 등 문학관 운영과 문학상 시행 모두 군산시가 주관하고 있다.

그러나 백릉의 친일 사실이 역사 기록으로 공인된 이상 시민의 공익을 책임지고 수행하는 국가 공공기관인 군산시가 막대한 공공예산을 들여 주관하는 데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다.
 
우선 국가 기관이 청산해야 할 친일 행위 같은 역사적 과오를 묵인 내지 정당화하는 사업에 앞장설 수는 없다는 주장과 상당한 예산이 소요되는 이 사업이 시민의 동의를 얼마나 받고 있느냐하는 절차적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문제들을 고려하지 않고 다만 문화관광 자원의 발굴이라는 홍보성 시책으로 추진한다면 그 성과는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이미 여러 해째 운영되고 있는 문학관 시설과 문학상 시상은 그 반응이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고 상금을 천만원이나 내걸어도 응모하는 작품이 지난 5년 동안 중복 작품을 제외하면  20여 작품에 미달하고 있는 정도이니 한해 겨우 4~5작품이 응모했을 뿐이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고 사업의 효용성과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대책이 강구될 수 있다.
 
‘백릉 문학관’의 운영은 근현대문화자원의 발굴과 관광자원 관리 차원에서 시에서 직접 관리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백릉의 순수문학 자료와 친일행적이 함께 조명되고 평가 받을 수 있는 자료의 제시와 문화 관광 콘텐츠의 개발이 필요하다.

그리고 ‘백릉 문학상’의 시행은 폐지하거나 가칭 ‘백릉문학상 재단’과 같은 민간단체를 설립토록 하여 운영 주체를 넘겨주고 주체의식과 사명감을 갖고 추진하도록 후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수상자 선정도 참신한 신인작가와 백릉연구자를 발굴하는 데에 중점을 두어 향토문단의 뿌리를 가꾸는데 초점을 ��춰야 할 것이다.

문학상 재단이 설립되어 향토 기업과 백릉을 사랑하는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백릉문학상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이의를 제기할 소지가 없어질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백릉문학이 떳떳하게 선양될 수 있을 것이다.

명분과 사회적 역사적 정당성도 확보되지 않은 사업에 국가공공기관이 막대한 예산까지 소모해가며 매달리면 그 성과도 보장 받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자칫 작품 수준마저 인정받지 못하는 몇몇 작가들의 나눠먹기식 문학상으로 전락할 수 있음이 우려되는 것은 글쓴이만이 아니라 백릉을 사랑하는 뜻있는 시민들의 생각이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