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쎄 올시다2009-11-26 14:09:05
최정욱 법무사
 | | 최정욱 법무사 |
우리는 대답하기 어려운 남의 물음에 대하여 자기의 태도를 분명하게 하지 아니하고 어물어물 할 경우 곧 잘 글쎄올시다라는 말을 쓴다.
사오십년전,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기한내에 수업료를 납부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중간고사나 기말시험이 가까워오면 어김없이 서무과 직원들이 교문앞에 서서 수업료 납입여부를 일일이 확인하고 미납학생의 출입을 통제하면서 내일까지는 꼭 가져와야 한다는 다짐을 받고 나서도 한 곳에 모아 두었다가 수업시간이 임박해서야 가까스로 들여 보내므로 넓은 운동장을 가로지러 교실까지 숨차게 뛰어가야 지각을 면하곤 하는 수모와 고통을 주기도 했다. 집아 형편이 어려웠던 나는 이 행사의 단골멤버 중의 한사람이었다.
몇학년 때인가 확실한 기억은 없는데, 이상하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詩)가국어시험문제로 출제된 적이 있었다.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이하 생략)
이 시에서 빼앗긴 들은 무엇을 표현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다.
“빼앗긴 들이라?-고 하면 일제에 의해 강점당한 삼천리 금수강산, 우리 조국산하에 대한 안타까움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라고 젊잖게 썼으면 좋았을 것을 수업료를 기한 내에 납부하지 못한다고 교문앞에서 당한 수모, 시험시간에 늦을 세라 넓은 운동장을 헐레벌떡 뛰어온 참담한 심사등이 교차되여 빈정이 사나워진 나는 답안지에 “글쎄 올시다”라고 써 냈다가 국어선생님으로부터 경을 친 일이 있다.
지난 10월 29일 헌법재판소가 미디어법 권한쟁의심판에서 절차의 위법성은 인정하면서도 법안은 유효하다는 절묘한? 결정을 한데 대하여 비난의 여론이 거세다.
“오프사이드는 맞지만 골은 인정된다”
“술을 마시고 운전은 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
“회사자금을 횡령하는 행위는 나쁘지만 돈은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한 것은 잘못이지만 점수는 인정된다”
“주가조작은 불법이지만 시세차익은 유효하다”
위의 예시(例示)는 내 생각이 아니라 인터넷에서 떠도는 비아냥 섞인 풍자의 패러디다.
근래에는 세종시 구성문제를 둘러싸고 여야간 치열한 다툼이 있는데 이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 같은 무식한 민초(民草)들은 판단이 아리송해서 글쎄올시다를 찾지 않을 수 없다.
세종특별자치시- 2002년 9월 30일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선거후보가 중앙당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한계에 달한 수도권 집중을 억제하고 지역경제 해결을 위해 충청권에 행정수도를 건설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한 것이 씨알이 되어 충남 연기군 일대에 2015년까지 정부부처가 이주할 행정중심복합도시(행복도시)를 건설하겠다고 한 내용이였으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원안과는 다른 목소리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더니 ”세종시는 경제학자인 내 눈으로 볼 때 효율적인 모습이 아니다. 계획한 일이기 때문에 원점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원안대로 추진하기는 어렵지 않는가“ 라고 하는 정운찬 총리의 수정론과 때 맞추어 대통령의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정책에 적당한 타협은 없다“는 발언에 야당과 충청권이 요원의 불길처럼 반대를 하고 있다. 거기에 한나라당의 박근혜 전 대표까지 ”세종시 문제는 보태고 뺄 것 없이 원안대로 추진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신뢰이자 약속“이라고 못을 박고 나서고 있는 형국이다. 부엌에 가면 며느리 말이 옳고 안방에 가면 시어머니 말이 옳은 격이니 어리석은 백성들은 누구 말을 따라야 할지 글쎄 올시다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숨을 고르고 냉정히 한번 생각해 보자.
나뭇가지 찢어 나누듯이 중앙에 있는 몇 개 부처만을 작위적으로 이전한다고 해서 과연 인구 50만의 명품도시, 자족도시가 되고 수도권의 인구분산, 국가균형발전이 이루어 질 수 있을까?,
가까운 예로 군산을 보라.
시청, 법원, 검찰청, 교육청, 농수협, 상공회의소등 주요기관이 밀집되여 있는 조촌동은 공무원 퇴근시간과 동시에 상가조차 문을 닫고 시가지는 적막강산이 된다. 정주(定住)의 의사없는 인구의 이동이 가져오는 결과다.
이명박 대통령은 세종시를 명품도시로 만들겠다. 원안대로 추진하겠다고 충청권의 표를 의식한 대선공약으로 한 약속과, 국정책임자가 되고 나서 보는 더 넓고 높은 차원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가 보다.
그렇다면, 약속을 어겼다는 지적에 대하여는 묵묵부답으로 외면만 할 것이 아니라 겸허하게 용서를 구하고 국민과 정치권이 납득할 수 있는 수정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올바른 처신이 아닐까. 참으로 글쎄올시다 다.
군산미래신문 (km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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