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이나 모습 따위가 한심하고 기가 막힐 때 우리는 흔히 웃기네라고 말한다.

 6, 70년경 군사독재 정권의 암울한 시대, 입이 있어도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지내던 냉소적 현실을 두고 웃기네라는 말이 유행하던 기억이 선하다.

 필자는 1967년부터 1969년 까지 사이에 주월 한국군의 한사람으로 베트남 중부에 위치한 나트랑(현지인들은 나짱이라고 부름)에서 근무한 바 있는데 그때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베트남 현지 아가씨와 사귀고 있던 한국군에게 베트남 아가씨가 “ 한국어로,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이별할 때 나누는 인사말이 무엇이냐?” 고 묻자 대답이 궁해진 병사가 먼산을 바라보다가 무심코 내뱉은 말이 “웃기네” 였다.

 그후 이 병사가 근무만기(勤務滿期)가 되어 귀국선에 오르자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별인사가 “웃기네”라고 알고 있던 베트남 아가씨는 부둣가에 나와 손수건을 흔들면서 “웃기네, 웃기네”하면서 울더라는 확인되지 않은 웃기는 이야기가 한 동안 인구에 회자(膾炙) 된 바 있었다.

 지난해 4월, 서울의 한 법원에서는 재판과정에서 39세의 판사가 피고인측과 말을 주고 받고 있는 도중, 69세의 노인인 원고가 재판장의 허락을 받지 않고 끼어 들었다는 이유로 “어디서 버릇없이 툭 튀어 나와 끼어드느냐”는 핀잔을 받고 아들이나 조카뻘 밖에 되지 않을 판사로부터 받은 그 말에 심한 모욕감을 느껴 국가 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한 바 있고, 당시 현장에 있었던 원고의 변호인은 현장에서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자괴감에 다음날 소송대리인을 사임했다고 한다. 웃기는 이야기다.

 시골 장터에서 처음 마주치는 장삼이사의 장돌뱅이 민초(民草)들도 10년 이상의 나이차이가 되면 높임말을 쓰는 것이 상례이거늘 신(神)을 대신하여 인간을 심판한다는, 가장 지성인이 되어야 할 법관이 아버지 뻘이 되는 노인에게 어디서 버릇없이 끼어드느냐는 말을 내뱉었다는 소식은 우리에게 웃기는 정도가 아니라 슬픔을 안겨 주는 안타까운 일이다.

 누가 과연 버릇이 없는 것인가.

 그 젊은 판사는 아마도 법관의 자격은 있는지 모르겠으되 법관의 자질은 부족하다고 한다면 버르장머리 없이 툭 튀어 나오는 말버릇이라고 핀잔을 받아야 할까.

 작년이던가? 전주지방법원의 김종춘판사는 유아급사증후군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두살배기 유아에 대하여 경찰이 신청한 압수수색 검증영장을 “부검을 실시하게 될 경우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입장을 헤아려 보았는가? 당사자들의 아픔에 한발 더 다가서는 것이 법관의 역할이다”라고 하면서 이를 기각한 바 있다. 당연한 말씀이다. 법관의 자세는 이래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 많은 국민들은 냉정한 머리를 가진 영리한 법관보다는 따뜻한 가슴을 가진 법관을 더 존경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인권위원회는 결정문에서 “통상 버릇없다는 표현은 어른에게 예의를 지키지 않을 경우 이를 나무랄 때 사용하는 말”로 비록 원고가 법정질서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고 하더라도 사회통념상 40대 판사가 69세의 노인에게 사용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볼 수 없으며 법정지휘권도 공복의 지위에 있는 공무원에게 주어진 권한인 이상 이를 국민에게 행사할 때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비롯한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지 아니하는 한도 내에서 해야 한다‘고 판단 했다. 천번 만번 옳은 지적이다.

 금년은 경인(庚寅)년, 호랑이 해란다.

 때마침 스스로를 바보라고하면서 낮은 곳에 임하시여 어려운 이웃들과 고락을 함께 하시던  고 김수환 추기경님의 선종(善終) 일주기를 맞아 그 분의 살아 생전의 모습과 높은 법대위에 앉아서 노인을 향하여 건방지다고 호통을 쳤을 호랑이 같은 젊은 판사의 모습이 교차 하면서 씁쓰레한 심사를 가눌 수 없다.

 참으로 웃기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