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습니다. 이렇게 깊고, 이렇게 많은 줄은,
언제나 환히 웃어주시며 버팀목이 되어주시던 부모님의 뒷모습엔
삶의 고됨과 지침이 감추어져 넘치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후회합니다.
낳으시고 기르시는 동안 받아온 사랑,
미쳐 깨닫지 못한 어리석음에 얼굴이 붉어집니다.
 주름진 손이 부끄럽다며 자식 앞에서도 감추시지만
자랑스럽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손. 부모님의 주름진 손입니다.)

 위 글은 제 글이 아닙니다.

 어느 지방 일간지에 부모님전 상서라는 제목으로 쭈글쭈글하고 거친 노인네의 커다란 손 사진과 함께 매일같이 계속하여 실리고 있는 멧시지입니다.

 처음에는 어느 기업의 광고 선전쯤으로 여기고 무심코 보아 넘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위 글과 손사진이 나를 보고 “나쁜 놈-“하고 꾸짖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면서 눈물이 도는 것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늙으면 주책이라던가

 세월의 두께가 더 해갈수록 눈물이 흔해집디다.  젊어 같으면 그냥 넘길만한 내용에도 곧 잘 눈물을 훔칩니다.

 작년임에도 벌써 오래된 옛 일 같기만 한데, 87세의 나이로 선종(善終)하신  김수환추기경께서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데 70년이 걸렸다”고 말씀하시던 생전의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면 맥없이 눈물을 흘렸었습니다. 높은 종교적 지위를 가진 추기경의 권위있는 죽음 앞이라고 해서 안타까움에 눈물을 보인 것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로 시작으로 하는  윤동주의 시(詩)를 가장 좋아 한다면서도 감히 읊어 볼 염치가 없었다는 그 인간적인 순수한 고백과 고뇌 앞에 마음이 아려 눈물을 보인 적이 입습니다.

 그런데, 눈물이라는 것은  정작 슬픈 때만 흘리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나이가 들수록 슬픈 경우에는 으레 그러러니 하면서 눈물이 나오지 않고, 그 보다는 희로애락을 막론하고 감정이 격해 지는 경우에 오히려 눈물이 흔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어쩌다 젊어 청상과부가 된 여인이 그 남편의 시신 앞에서 몸부림을 치며 우는 모습은 여럿 보았으나 백년해로를 하던 노(老)부부가 천수를 다한 배우자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보이며 우는 모습은 자주 본 적이 없습니다. 슬프지 않을리 없으련만 무딘 감정 탓인가 아니면, 체념(諦念)이련가.

 엊그제 월드컵축구경기에서 우리나라가 그리스에 2대0으로 이길 때에는 코끝이 찡-하도록 감격스러웠고 북한과 브라질의 경기에 앞서 북한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눈물로 범벅이 된 정대세 선수를 보면서는 통일된 조국이 되여 박주영과 정대세가 나란히 입장한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면서 남과 북이라는 이념과 갈등을 벗어던진 더 큰 그 무엇이 가슴속에서 울컥 치밀어  또 한번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한국적 아버지에 조선적 어머니사이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조총련계 아이찌 조선 중고급학교와 조선대학교를 나온 정대세. 북한을 부모와 같은 존재라고 말하고 태어난 일본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면서도 일본 사람들과 노래방에 가면 꼭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노래를 부른다는 이 젊은이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 눈물을 감추고 생각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