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말에 모처럼 아내와 함께 뮤지컬 “명성황후”를 관람하였다.

 15년 명성에 걸맞게 웅장한 스케일이 돋보이는 감동적인 무대였다.

 뮤지컬 “명성황후”는 구한말 급박했던 정세를 배경으로 임오군란, 갑신정변, 갑오개혁 등 굵직굵직한 사건을 거쳐 결국은 국모의 억울한 죽음으로 이어지는 파란만장한 역사적인 드라마로
 아내와 나는 2시간 반 가량을 몰입하여 함께 통탄하며 가슴을 치기도 하였다.
뮤지컬을 관람하고 나오니 밖은 어느새 바람이 선선했다.

 초가을 바람 속에서 지난 역사를 반추해보며 “지난 역사는 되돌릴 수 없어도 지금은 어떠한가. 역사적 과오는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한다” 고 반성을 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지난 36년간 우리를 지배한 일본에 대해 경원시하며 적대감을 가져 왔다.
일제강점기 동안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받았던 고통을 생각하면 일면 그런 감정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결과가 있으면 그 결과에 이르게 된 원인과 과정이 있게 마련이고 일제강점 또한 다르지 않을 거라 본다.

 이제 옛날의 지배자를 미워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동일한 역사적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 그 원인과 과정을 되돌아봄으로써 역사적 교훈을 얻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지금으로부터 약 400여년전인 1592년(선조 25년) 이 땅은 임진왜란이라는 병란을 겪었다.

 선조는 임진왜란 발발 2년전에 일본을 정탐하기 위하여 황윤길과 김성길을 일본으로 보냈다.
이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까지 만나고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가능성이 있음을 알고 돌아왔지만 정작 보고에 있어서는 의견을 달리하였다.

 서인에 속하는 황윤길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가능성이 있으니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동인에 속한 김성일은 대비할 필요가 없다고 보고하였다.

 당시 조선은 서인과 동인이라는 당파가 대립하고 있었고 조선이라는 나라보다는 각기 자신의 당파의 이익을 우선시하여 보고를 한 것이다.

 결국 선조는 세력이 컸던 동인 김성일의 주장을 수용하였고, 율곡 이이선생도 10만 양병론을 주장하며 일본의 침략에 대비할 것을 호소하였으나 이 또한 당파싸움에 밀려 채택되지 못하였다.

 이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선조는 도성을 버리고 파주로 몽진을 떠나는 치욕까지 겪게 되었다.
이러한 조선은 임진왜란의 치욕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이었을까? 그로부터 300년 후 조선은 또 다른 치욕을 겪게 되었다.

 1863년 철종이 승하하였다.

 당시 안동김씨의 세도정치 속에서 철종은 정치적 실권이 없었으며, 몸이 약하여 뒤를 이을 후계자도 없었다.

 이런 경우 후계자는 대비가 지명하게 되었는데, 대왕대비 조씨는 조선의 앞날을 위하여 훌륭한 임금이 아니라 자신의 섭정과 안동김씨의 세도를 위협하지 않는 연약한 임금을 선정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난봉꾼 행세를 하던 이하응(흥선대원군)에게 속아서 그의 아들 고종을 임금으로 세웠다.

 이후 흥선대원군은 또 어떠하였는가? 세도정치의 폐해를 알고 있던 대원군은 고종의 중전을 간택할 때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는 등 가문이 약하고 외가가 없는 민비를 간택하였다.

 하지만 정치적 야심이 있던 민비는 대원군과 대립하게 되었고 한 집안에서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러시아, 일본 등 각기 다른 외국세력을 등에 업고 싸우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그런 와중에 뮤지컬 명성황후에서 장대하게 그려졌던 것처럼 민비는 일본 낭인에게 시해를 당하게 되었고 잠시 대원군이 정치적 우위를 점하였으나 결국은 1910년 8월 29일 조선은 일본의 지배로 넘어가게 되었다.

 올해는 경술국치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조선은 5백년 역사를 돌아보면 훌륭한 점도 많지만, 나라의 이익이 아닌 사익을 위하여 국가의 일을 결정하고 서로 분열하여 싸우는 동안 국력이 쇠약하여 일본에게 지배권을 넘겨주며 그 막을 내리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의 정치는 어떠한가? ‘역사를 거울삼아 제대로 가고 있는가’ 라고 자문해 볼 때 자신있게 ‘그렇다’ 라고 답하기가 쉽지 않다.

 지난 30년간 급속한 경제성장의 결과 우리의 삶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윤택해졌다.

 하지만 우리의 국민의식은 경제성장을 따라가지 못하고 예전 방식대로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노파심이 든다.

 오늘날의 국제정세 또한 옛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옛날의 전쟁이 영토를 확장하고 재물을 빼앗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면 오늘날의 전쟁은 경제를 매개로 한 경제전쟁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 전쟁에서 패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는 역사적 결과에 집착하기 보다는 원인과 문제점을 찾고 여기서 교훈을 얻어 후회스러운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경술국치 100년, 이제 일본에 대해 적대감을 가지기 보다 왜 우리가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되었는지 원인과 과정을 분석하는 자성의 몸가짐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본다.

 바로 지금부터라도 지도층, 원로, 공직자가 앞장서서 자성과 노력의 자세를 보이고 국민 모두 합심하여 역사에 대한 인식을 전환함으로써 앞으로 우리나라가 실패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고 성공의 역사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