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서 전 지사장

 노월자, 장광희씨 등 군산 현묵회 회원들과 함께 가진 이날 작품전은 조촐하면서도  뜻 깊게 베풀어졌다.

여지 여사의 작품은 대한민국 미전 초대작가 이름에 걸 맞게, 여사처럼 청초하고 단아한, 그러나 힘이 깃든 특유의 사군자로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강현욱 전 장관과 문동신 시장 등 많은 군산지역 인사들이 참석했고 이들의 축사가 이어졌다.

여지 여사는 인사말에서“부끄러운 작품들”이라고 전제하고 “남편의 뒷바라지 덕택에 지금 껏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다”며 부군에게 따뜻한 고마움을 전했다.

안상근 부회장은 아이처럼 기쁜 표정으로 “제 아내지만, 분주한 살림살이를 하면서 틈을 내어 작품전을 열게 된 것에 대해 남편으로서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부인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표했다.

 그는 바쁜 일정을 제쳐두고 한달 전부터 초대장을 손수 만들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등 부인의 작품전 준비를 도맡기도 했다.

부부 사이 금슬 얘기를 꺼낸다면 아마도 이들을 두고 한 말이 아닐까.
그는 지금도 부인에게 반말을 하지 않고 경어를 사용하고 있다.

환갑이 지났으면서도 경어를 쓰는 그들에게 그 흔한 부부싸움이 있을까 싶지 않다.

그는 또 준수한 외모와 함께 몸가짐도 흐트러짐이 없다. 이들에게 요즘 말로‘명품’부부라고 말하면 과찬일까. 우리네와 같은 장삼이사(張三李四)에게는 그저 먼 곳의 타산지석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안상근 부회장은 ‘행순작 잠자리표’가위를 만든 동양기업 창업주 안행순 회장의 장남이다.

 일찌기 부친으로부터 경영을 넘겨 받아 지금은 미국을 비롯 중국, 이태리 등 전 세계 재단가위 시장의 절반을 점유, 수출하는 놀라운 성장을 일구어냈다.

사실‘행순작 잠자리표’ 가위는 군산에서‘만월표 고무신’과 함께 나이 든 사람들에게는 향수가 깃든 이름이다.

우리들 어머니와 누나의 반짓고리에는 항상‘행순작 잠자리표’가위가 있었고 또‘만월표’ 검정 고무신은 어렸을 때 가난했던 초등학교 시절 늘 신고 다녔던 추억의 신발이다.

‘잠자리표’가위를 만든 동양기업은 구암천 도로 변에 있었다. 창업주인 안행순 회장(89)은 일제 때 부평의 일본 병기창에 근무하면서 익힌 주물기술을 살려 해방되자 마자 고향인 군산에 내려와 가위 공장을 설립했다.

기업의 전통이 무려 65년이나 됐고 재단가위 한가지에만 정진해  품질은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중국에서는 처녀들이 시집 가면서 혼수품에 ‘잠자리표’가위를 꼭 챙겨간다고 하니 그 가위가 해외에서도 우리 군산을 빛내고 있는 것이다.

세풍, 백화, 경성고무 등 국내 굴지의 향토 기업들이 사라지고 동양기업이 외롭게 남아 충남 장항에서 기업을 이어가고 있다.

5년 전, 안 부회장은 군산 공단에 입주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으나 당시 최소 분양면적 5만평의 벽에 걸려 공단부지를 확보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장항으로 이전했고 그 후 회사 이름도 헤가로 변경했다.

 홀로 남은 향토기업, 군산의‘잠자리표’가위 공장이 부지 때문에 타 지역으로 이전한 것은 못내 아쉬운 일이다.

가위 하나로 군산의 명예를 전 세계에 떨치고 있는 ‘행순작 잠자리표’가위 창업주 안행순 회장(89)은 지금 안타깝게도 병석에 누워 있다고 한다.

차제에 안 회장의 쾌유와 함께 안 부회장 내외의 ‘처음처럼’과 같은 행복과 회사의 더 큰 발전을 군산 시민의 한사람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