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 지진과 쓰나미 피해를 보면서 인간이 자연 앞에서 참으로 나약하고 무기력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새삼 절실히 느꼈다.

제아무리 자연현상이라 하지만 필자는 일본 지진 피해를 보고 살아 있다는 자체가 행복하고 다행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죽음이야말로 삶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삶’의 반대말은 ‘죽음’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이 둘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고 믿기 쉽지만, 따지고 보면 삶과 죽음이야 말로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죽을 때 어떻게 죽는가’보다는 ‘어떻게 한 평생을 살았는가’하는 것이 한 사람의 인생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그럼,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일까?

사람에 따라 답이 다르겠지만, 오랫동안 봉사활동을 실천해온 필자는 ‘벽을 쌓지 않고 다리를 놓는 삶’이야 말로 가장 값지고 보람된 생의 가치라고 말하고 싶다.

벽은 사람과 사람을 가로막고 갈라놓지만, 다리는 서로를 이어주는 끈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마음을 텅 비운 진정한 봉사야 말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거뜬히 해낼 수 있다.

보상을 기대하지 않은 참다운 봉사는 인생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던 사람에게 꼭 살아야 겠다는 신념과 의지, 삶의 의욕을 북돋아 줄 수 있다.

마음을 비운 봉사란 봉사자 입장을 떠나 오로지 어려운 여건에 있는 봉사 수혜자만을 위하는 것을 말하는데 요즈음에는 이렇듯 고귀한 봉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소년소녀 가장들을 특정한 곳에 모아 놓고 일일이 기념 사진을 찍어가면서 몇푼 안되는 장학금을 전달하는 모습, 장애인 시설에 소량의 생필품을 지원할 때 마치 실적이라도 올리듯이 사진을 찍어 매스컴에 알리는 등 마음을 텅비우기는 커녕 ‘매스컴 노출증’에 사로 잡힌 가엾은 봉사활동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진정한 봉사자는 수혜자에게 자연스러운 기다림의 시간을 선물할 수 있어야 한다.

연필과 사탕을 손에 쥔 채 캄보디아 어린이들로부터 기다림을 받는 99세의 할머니, 노동자들이 언제고 기분좋게 기다리는 방글라데시의 한국인 젊은 의사 등 어떠한 보상도 기대하지 않고 텅빈 마음으로 아가페적인 봉사와 사랑을 실천하는 그 모습들이 진정한 봉사의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권위있는 기관으로부터 표창을 받기 위해 봉사활동을 하는 눈치 빠른 모습이나 지역사회에서 상을 타기 위한 목적의 스펙쌓기식 봉사 등은 순수성 자체가 결여돼 있기 때문에 냉혹한 비판의 잣대에 직면하게 된다.

논어에 덕불고필유인(德不孤必有隣)이란 말이 있다. 덕이 있으면 따르는 사람이 있으므로 외롭지 않다는 뜻이다.

순수성이 결여된 내세우기식 봉사는 덕 또한 결여돼 있어 잠깐의 눈속임으로 설령 상을 탄다고 하더라도 남들이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입방아에 휘말리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봉사자란 남들이 상받을 자격을 인정하고, 또 그들이 진정으로 기다리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정치인, CEO, 자원봉사자들 모두가 국민이 간절히 기다릴 정도로 헌신적으로 몸을 불태워 일한다면 이 얼마나 근사한 삶인가?

옛말에 ‘염불은 관심 없고 잿밥에만 마음이 있다’는 속담이 있고, 성경에서는 ‘왼손이 하는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고 한 것 처럼 숨어서 좋은 일을 하면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게 된다.

순수함과 진실한 사랑으로 실천하는 행동이 진정한 봉사자의 태도가 아닌가 싶다.

인도 속담에 ‘덕을 말없이 베푼다면 반드시 돌아온다’는 말이 있다.

댓가를 의식한 봉사는 흔한 말로 해주고 공치사하는 것과도 다를 바 없다.

지금 이순간에도 많은 현장에서 땀흘리는 봉사자들의 아름다움이 영글어 가고 있다.

혹시 마음을 텅 비우지 않고 봉사하는 사람이 있다면 즉시 봉사를 중단하거나 마음 한켠의 보상심리를 버리라고 말하고 싶다. 버릴 때는 과감히 미련 없이 버려야 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빈손으로 왔던 것 처럼 봉사 역시 마음을 비우고 빈손으로 한들 아무 손해가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세계 봉사의 선봉자인 빌게이츠가 덕을 베풀었다는 말은 들었으나 상 받았다는 말은 듣지를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