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 어머니2011-09-15 18:14:19
법무사 최정욱
어머니.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던 폭우도 오는 절기 앞에는 어쩔 수 없는지 요사이는 아침 저녁으로 제법 청량한 바람이 초 가을 날씨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내일 모레면 명절 중에서도 가장 크게 친다는 한가위, 추석이라고 하네요.
이맘때가 되면 절량(絶糧)이 되어 채 여물지 않은 벼를 베어다가 가마솥에 쪄 말려서 오릿쌀을 찧어 먹던 어릴 적 일이 생각납니다.
유난히도 입이 짧아 꽁보리밥을 못 넘기던 이 자식 때문에 그 많은 형제들의 눈치를 보면서도 몰래 몰래 제 밥그릇의 한가운데에 흰쌀밥을 묻어 퍼주시던 어머니.
지금은 보리베기도, 벼심기도 모두 기계를 사용하여 수월하게 농사를 짓지만 그 전에야 어디 그랬습니까? 오뉴월 농번기철에는 보리수확하랴 모내기하랴, 오죽하면 부엌에 있는 부지갱이 조차 부역을 내보낸다고 했겠습니까?
제 나이 열 대여섯되던 해 여름이였던가.
그 날도 왼종일 껄끄러운 보리를 베고는 석양을 등받이 삼아 논두렁을 나오는데 어머니께서 꼬깃꼬깃한 지전 한 장을 내 손에 쥐어 주시면서 “시내에 나가서 너 먹고 싶은 것 사먹고 천천히 집에 오렴” 놀란 내가 왠 돈이냐고 눈으로 묻자 “오늘이 네 귀빠진 날이란다” 하시곤 먼산으로 고개를 돌리시는데 그 눈가에 어린 이슬을 아무리 어리석은 자식이라지만 제가 어찌 눈치를 채지 못할까.
자식의 생일날조차 고된 일을 시켜야 하는 가난한 시골 살림에 어머니의 가슴 아픔이 말은 없으되 온통 들 가운데 가득하더이다.
학교에서는 점심시간이 되면 검은 보리밥에 반찬이라고는 달랑 한가지 시디신 김치- 그것도 국물이 번져 붉은 지도를 그려놓고 있는- 도시락이 친구들 보기에 부끄럽다고 가져가지 아니할 심사로 가만히 마루에 내려 놓고 나선 이 자식이 미쳐 모르고 가져가지 않은 것으로 착각하고는 배고플 자식을 위해 십리길을 머다않고 그 도시락을 들고 허위 단심 달려 오신 당신이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의 마음 아픔이 어떠했을까요?
저도 낼 모레면 고희(古稀)입니다. 흔히 엊그제 일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 나이가 되였다고 말들하지만 어찌하여 이런 일들은 몇 십년이 지난 이 순간에도 또렷하게 기억되여 또 다시 제 여린 눈가에 물기를 적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성가(成家)하여 자식을 낳아 키워 보니 부모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고, 크게 넉넉한 것은 없어도 큰 시름 없이 지낼 만큼은 되는 형편인지라 평소에 하지 못했던 효도를 조금이나마 해 보고 싶은 데, 그렇게도 이 자식이 미웁던가요?
인생 70이 후반전(後半戰)이고, 백세나 되어야 연장전(延長戰)이라는데, 너무도 일찌기 이 세상을 하직하시여 이 자식의 가슴에 이토록 큰 불효의 못을 박아 주시다니...
어머니. 어제는 산소에 벌초를 하고 왔습니다. 벌초를 마치고 어머니 묘소 옆에 한참을 앉아 멀리 앞 산을 바라보면서 옛날의 일들을 기억해 보고 이제는 저도 살아 온 날보다 어머니 곁으로 갈 날이 더 가깝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참, 어머니. 늦게 말씀 드려 죄송합니다.
어머니의 손주녀석 말입니다. 어릴 적 말썽도 많았던 대현이가 벌써 삼십을 훌쩍 넘겼습니다. 대기업의 연구원으로 취직도 되었습니다. 장가를 가서는 아들 딸을 두었답니다.
며칠전입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어린 손주녀석들의 재롱이 눈에 삼삼하여 눈치없이 자식들의 집을 찾아 나섰습니다. 저녁식사 시간입니다. 어머니의 손주며느리이자 저에게는 자부(子婦)되는 애미가 제 새끼들이 끼니때가 되어도 밥 먹을 생각은 하지 않고 도망다닌다고 손수 수저를 들고 뒤 쫓아 다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먹을 것이 너무 많아 풍요속에서 먹거리 귀한 줄을 모르고 자라는 어린 것들을 보면서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꼈습니다.
어머니. 당신은 가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머니를 보내 드리지 않았습니다. 아니 보내드릴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
군산미래신문 (kmrnews@hanmail.net)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