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폭력, 모두 공범자다2012-01-16 17:48:32
여울 김준기(시인. 전직교장)
지난해 대구와 광주의 중학생이 또래집단의 폭력에 시달리다가 끝내 자살하여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고 그 부모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가. 학교폭력 사건은 처음이 아니다. 그동안 수많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우리 사회는 그때마다 야단스럽게 뒷북을 치다가 어느 사이에 슬그머니 잊어버리곤 하는 일을 되풀이해 왔다.
이번 일도 그렇게 흐지부지 되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수년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하며 목숨을 버린 여학생의 절규가 새삼 귀에 쟁쟁 울린다.
왜 우리 어린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있는가. 왜 사람들은 이 꽃다운 아이들의 비극을 교통사고나 화재사건처럼 쉽게 잊어버리는가. 왜 우리 사회는 우리 어린 자식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가. 왜 국가는 아이들의 죽음을 방치하고 있는가.
온갖 경제지표를 앞세우며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고 자기도취에 젖어 있는 대한민국은 이제 아이들의 삶을 되돌아볼 때도 되지 않았는가.
학교폭력의 원인은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인성교육의 실패에 있다. 좀 더 들여다보면 공교육과 가정교육 기능의 상실, 생사를 건 경쟁구도의 사회체제, 사회에 만연한 폭력문화 등이 우리 아이들을 죽게 하는 근본원인이다.
문제는 원인을 몰라서가 아니라 이 원인들을 나라가, 사회가, 학교가, 부모가 너무 가볍게 일과현상으로 보는데 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진정으로 성찰하지 않고 요란만 떨다가 만병통치약인 듯 통제와 엄벌을 선언하는 것으로 소임을 다했다고 책임을 회피해 온 것이 우리 사회다.
공교육의 중심인 학교가 사람을 기르는 기능을 잃고 입시중심 경쟁체제로 전락하면서 지금과 같은 사태는 이미 예측되고 있었다.
한·중·일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일본(28%), 중국(38%)보다 훨씬 높은 49%의 학생들이 학교폭력의 피해를 당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우리 학교는 왜 이렇게 되었는가.
매슬로우(미. 심리학자)의 인간 성장과정에는 성취욕구 5단계가 있다. 그 기본적인 욕구가 먹고 자고 놀이하는 생리적 욕구이다. 이 욕구가 채워지지 못하면 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공격적이 된다. 하루 필요 수면 시간인 8시간을 자는 중3 아이는 20%도 안 된다고 한다.
한창 뛰고 놀 시기에 공부, 성적, 대학이라는 경쟁구도에서 사교육에 내몰리고 있는 아이들에게 8시간 잠이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일 것이다. 게다가 과외학습과 학원에 쫓기는 아이들은 학교를 단지 오락실 정도로 생각하거나 병든 사막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학교가 이 지경인데 인성교육이 제대로 될 수 있겠는가.
가정은 어떠한가. 날로 심화되는 경제구조의 양극화로 돈벌이에 밀려 가족이 해체되거나 서로 다른 시간대에 생활하다보니 인간적인 접촉은 어려워지고, 뱁새가 황새 따라가야 할 판인 불안정한 가정은 갈수록 교육기능이 약화되고 있다.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벌써 끝났다고 한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는 정상적인 학교교육으로 신분상승을 이룩할 수 없는 철저한 사교육 의존 사회로 변질되었다. 그러니 아이들은 사막과 같은 학교와 학원과 오락실에서 헤매고 부모는 가정경제와 사교육비 마련에 아이 돌볼 여유가 없다. 거친 폭력사회에 방치되어 있는 것이다.
사회 환경은 어떠한가. 이미 폭력문화가 만연되어 있는 사회 환경은 폭력에 대한 범죄의식을 크게 약화시키고 있다. 대구와 광주 사건의 가해자인 아이들이나 ‘아침마당(한국방송.1.9)’에 전화 연결된 한 가해 중학생이 그들의 행위에 대해서 ‘그냥 장난으로 한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를 내버려두면 좋겠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말하며 별 죄의식을 나타내지 않는 것은 이런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폭력은 주먹으로만 발생하지 않는다.
권력과 경제력을 가진 강한 자들의 약자에 대한 무시와 불평등의 강요가 일상화되고 법마저 권력 앞에 무력한 사회에서 아이들은 갈등과 무력감에 빠지고 쾌락과 폭력의 유혹에 아무 죄의식 없이 휩쓸리게 된다.
이제 학교와 교사에게 책임을 묻기 전에 국가의 모든 정책을 동원하여 공사립 학교의 체제를 혁명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인간중심교육은 국가차원 교육의 절대명제이다. 대학입시제도와 과학고, 외국어고 등 특목고, 자율학교 등을 본질적으로 변혁해야 한다.
초·중·고등학교에서 윤리 도덕교육과 아이들의 감성과 통찰력을 기르는 문학 예술, 정정당한 경쟁방법과 심신의 건강을 기르는 체육교육을 강화하고, 적성과 자율을 기르는 체험, 동아리활동도 강화해야 한다.
경쟁체제를 이용하여 명문학교로 미화하고 돈을 버는데 몰입되어 있는 사립교육기관이나 사교육 이익집단의 반발이 거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을 더는 살릴 수 없다. 이러한 변혁의 과정을 수행하는 동안 정부기관과 모든 자치단체에 맞춤형 대안학교 과정을 설립하고 아이들의 치유와 돌봄의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내 아이는 아니다. 죽는 아이는 공부할, 경쟁에서 이길, 긍정적 사고의 의지가 약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인생은 승부의 세계이니 나약한 아이들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매우 비인간적이고 위험한 야만적 잠재의식을 이 사회가 버리지 않는 한 어떤 대책도 아이들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 우리는 아이들의 죽음 앞에서 공범자다.
군산미래신문 (km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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