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군과 설악산2012-06-05 09:32:01
박종서 전 연합뉴스 전북지사장
산에 오르면 초록나무의 싱그러운 내음이 가슴을 확 트이게 하는 신록의 계절, 하루 하루가 아까운, 5월이 어느덧 훌쩍 지나간다. 5월은 또, 부모 등 가족을 다시금 생각케 하는 가정의 달이기도 하다.
마누라, 자식 등 가족 자랑을 하면 팔불출이라지만 나는 나의 형에 대한 존경심과 자랑과 사랑은 주저하고 싶지 않다. 더욱 이 가정의 달에야.
호남 출신은 출세하기 어려웠던 과거‘경상도 정권시절’, 형은 공군전투비행단장을 역임한 공군 장군이었다.
집안이 가난해 사범학교를 나왔는데 교사가 되지 않고 사관학교를 갔었다. 성정이 올곧은 탓에 무관으로서 제격인 분이었다.
현역 시절, 학업도 게을리하지 않아 박사학위를 받은 덕에 지금도 대학에 강의를 나가고 있다. 이제 집 나이로 70세, 그러나 아직도 꼿꼿한 군인의 모습을 잃지 않고 있다.
지난달, 서울에 살고 있는 형을 찾아갔었다. 12년째 임파선암을 앓고 있는 형수는 방안에서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형이 형수에게 다가가“종서, 종서야”하면서 큰 소리로 말했지만 형수는 으레히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형은 “형수가 말을 못해도 널 알아볼꺼다”라고 말했다.
암이 뇌에 전이되어 말도 하지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식사는 물론 대소변도 일일이 돌보야 하는 형수를, 형은 12년 동안이나 수발하고 있다.
언젠가 형에게 “형님, 형수님이 저렇게 아프신데 형님이 너무나 고생이 많습니다”라고 했더니 형은 대뜸“사람은 누구나 다 아프다. 형수는 다만 남보다 좀 더 일찍 아플뿐이다”고 태연히 말했다. 그러면서 “이건 나에게 주어진 숙명일 뿐”이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언제인가 또 형님에게, 바람도 쏘일겸 해서 군산에 와 운동도 좀 하자고 했더니 “그래 알았어, 근데 나 지금까지 설악산도 한번 가보지 못했어. 낮에는 일하는 아주머니가 있지만 밤에는 내가 집사람을 수발해야 하기 때문에 어딜 못간다”는 것이었다.
형은 지난해 형수의 병 수발을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증까지 따냈었다. 시험을 본 수험생 가운데 제일 고령자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형은 또 매주 금요일이면 어김 없이 마트에 가서 장을 본다고 했다. “형수에게 좋은 야채와 과일, 반찬거리를 손수 장만하는 것이 낙이다”면서도 “이것은 지난 주에는 얼마였는데 왜 값이 이렇게 많이 올랐는지” 하며 푸념을 하기도 했다.
그 흔한 설악산도 나이 70이 될 때까지 가지도 못한 장군.
아내를 얼마나 사랑하면 이 처럼, 목자처럼 아내의 병 수발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그저 형 앞에서 머리가 숙어질 뿐이다.
이 가정의 날에 가족을 생각하면 형이 제일 먼저 가슴에 떠오른다.
군산미래신문 (km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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