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살 소년과 29만원 할아버지2012-06-20 10:07:00
김준기 시인
열한 살 어린이가 쓴 시 ‘29만원 할아버지’가 인터넷과 에스엔에스(sns), 트위터 등에 떠올라 급속히 전파되더니 주요 일간지 신문에도 실려 사회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서울 연희초등학교 5학년 윤00 어린이는 이 시로 5.18광주항쟁기념’제8회 서울청소년대회 문예공모전에서 서울지방보훈청장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이 시의 주제와 내용이 우리 국민과 역사에 피맺힌 상처와 한을 남긴 우리나라 현대사의 진실을 묻고 성찰하는 글이어서 파장과 감동을 일으키는 한편 어른들에게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갖게한다.
시의 의미를 어른의 시각으로 따지고 논하기 전에 어린이 눈높이에서 직접 느껴보기 위해서 글 전문을 읽어보자.
「우리 동네 사시는 / 29만원 할아버지 / 아빠랑 듣는 라디오에서는 맨날 29만원밖에 없다고 하시면서 / 어떻게 그렇게 큰 집에 사세요? /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지르셨으면 할아버지네 집 앞은 허락을 안 받으면 못 지나다녀요? / 해마다 5월18일이 되면 우리 동네 이야기가 나오는데 / 그것도 할아버지 때문인가요?
호기심 많은 제가 그냥 있을 수 있나요? / 인터넷을 샅샅이 뒤졌죠 / 너무나 끔찍한 사실들을 알게 되었어요 / 왜 군인들에게 시민을 향해 총을 쏘라고 명령하셨어요? /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죽었는지 아세요? / 할아버지가 벌 받을까 두려워 그 많은 경찰아저씨들이 지켜주는 것인가요?
29만원 할아버지 / 얼른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비세요 / 물론 그런다고 안타깝게 죽은 사람들이 되살아나지는 않아요 / 하지만 유족들에게 더 이상 마음의 상처를 주면 안 되잖아요 / 제 말이 틀렸나요? 대답해보세요! / 29만원 할아버지.」
이 시의 제목이기도 한 ‘29만원 할아버지’는 대한민국 국민라면 거의 누구나 금방 알 수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얼마나 포악하고 타락했기에 순진한 어린이의 눈과 가슴에 이처럼 처참한 모습으로 새겨져 있는지 안타깝고 서글프기 짝이 없다.
이것이 어찌 이 어린이의 감정뿐이겠는가. 전 씨는 군대를 동원하여 정권을 차지하고 이를 정당화하고 권력을 유지 지속하기 위해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들을 총살한 그 일당과 함께 12·12사태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 수천억원에 이르는 대통령 비자금 사건으로 1995년 구속수감되어 사형을 구형받았다가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에서 무기징역 및 추징금 2,205억원을 선고받았다.
비록 정치적인 이유로 김영삼 정권에 의해 사면 복권되었다고 하나 그 몸 속에 흐르는 흉악한 죄악의 피가 거울처럼 맑아지거나 씻겨진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요즈음 전 씨와 그의 추종세력들의 행동거지는 독재 권력 시대의 모습을 방불케 한다. 29만원의 가난뱅이가 수억원의 호화주택에 살면서 자식들은 수천억의 부동산을 사들이고 억대 결혼식을 올리고 수천만원의 골프대회를 주관하고 기부천사로 둔갑해 육군사관학교와 출신고등학교에 거액의 기부금을 내면서 마침내는 개선장군처럼 육사생도들의 사열을 받는 세계역사에서도 전무후무할 쇼를 연출하고 있다.
더구나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큰절을 올리는 추종세력들이 있으니 참으로 가관이고 통탄스럽기 짝이 없다.
이 시대 파렴치한 어른들이 저지르고 있는 더러운 역사 앞에서 순진무구한 11살 어린이가 본 진실의 목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놀라고 또 부끄럽다. 아니 이 나라 미래 역사를 주도할 대한민국 어린이들이 이처럼 날카롭고 정의로운 진실을 보고 있다는 것에 대해 감동한다. 이제부터라도 어른들은 역사 앞에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
군산미래신문 (km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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