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우리 사회의 멍든 시민의식2013-03-11 09:56:15
여울 김준기(시인. 전직교장)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란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이다.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 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에서 비롯되었다.
실제로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영국의 고위층 자제가 다니던 이튼칼리지 출신 중 2,000여 명이 전사했고, 포클랜드전쟁 때는 영국 여왕의 둘째아들 앤드루가 전투헬기 조종사로 참전하였다. 6·25전쟁 때에도 미군 장성의 아들이 142명이나 참전해 35명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다.
당시 미8군 사령관 밴플리트의 아들은 야간폭격 임무수행 중 전사했으며, 대통령 아이젠하워의 아들도 육군 소령으로 참전했다. 중국 지도자 마오쩌둥(모택동)이 6·25전쟁에 참전한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듣고 시신 수습을 포기하도록 지시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과연 우리나라 사회 고위층들은 어떠한가? 글쓴이는 우리나라 대통령을 비롯해서 장차관과 고위 공직자, 그리고 재벌의 자녀가 6.25전쟁에 자진 참가해서 목숨을 잃었다거나 휴전선 비무장지대 경비지역에서 복무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그런데도 우리 국민들은 이들의 행위에 대해 마치 성직자처럼 관대한 아량을 베풀고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요즈음 새 정부의 고위공직자 임용 후보자 청문회에 대한 여론이 분분하다. 이들 후보자들과 가족들에게 붙어 다니는 것이 본인 또는 아들의 병역 기피와 면제, 위장 전입과 부동산 투기, 불법적 재산 취득 또는 증여와 탈세, 권력편승과 공공예산 불법 사용 등 마치 초중고등학교 졸업장처럼 한결같은 이력들이다. 국가 고위 공직자나 장차관이 되려면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조건인 것으로 착각하게 될 정도이다.
문제는 사회적 관행이라는 잘못된 의식에 중독되어 있는 이들 고위층들에게 일차적 책임이 있겠지만 이러한 사회 부패의 암적 요인에 대하여 턱없이 관대한 시민의식이 더 큰 병적 현상이다. 며칠 전 한 식당에서 겪은 일이다. 여기저기 밥상머리마다 새 정부의 고위공직 임용 후보자에 대한 이야기가 토론회라도 열린 것처럼 들뜨고 있었다. 이야기판은 대게 그중 위풍 있어 보이는 한사람이 이렇게 마무리하며 끝을 맺었다.
“그 위치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살았어요. 돈 있고 배경 있는데 어떤 부모가 자식 군대 보내 고생시키겠어요. 남들 모르는 부동산 정보 이용해서 재산 늘리고 위장전입 좀 해서 자식에게 좋은 교육환경 마련 해주고 세금 좀 피해서 재산 상속하고 증여하는 게 무슨 큰 죄인가요. 그렇게 못하면 오히려 무능한 사람이지요. 안 그래요?”
내 권력 내 재산 내 수완으로 내 가족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의식을 가지고 국가 공직을 맡는다면 그들은 고급 정보와 권력으로 더 큰 돈과 명예와 권력의 성을 쌓는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개념없이 관대하게 생각하는 시민의식이 사회문제를 더 부도덕하게 만들고 있다. 그들은 국민 앞에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대통령 당선인의 부모사진을 휴대폰 고리로 만들어 보란듯이 달고 다니는 유치한 장관 후보자처럼 자신의 목줄을 쥐고 있는 권력자에게 충성할 뿐인 것이다.
대통령을 비롯해서 공직자의 모든 권한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다. 이 권한이 권력자 자신과 주변을 위해 악용되면 국가사회는 물론 국민들도 부패의 늪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사회지도층에게 특별히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역사적으로 지도층의 도덕의식은 계층간 대립을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으로 여겨져 왔다. 지금처럼 국민의식이 이념갈등 동서갈등 세대갈등으로 확대되고 빈부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국민대통합을 위해서는 국가사회 지도층의 높은 도덕성과 함께 시민들의 날카로운 도덕의식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오랜 일제의 식민지 생활과 군사 독재정권 아래서 형성된 권력지향의 보수적 국민의식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멍든 민주시민의식이 이제는 살아나야 한다. 온 시민이 함께 살려내야 한다.
군산미래신문 (km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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