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12월 24일입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그날은 거센 눈보라에 바람조차 차가운 날씨였습니다.

흥남부두에서 마지막 철수하는 미 상선 빅토리호 선상에서는 미 10군단 사령관 알몬스장군과 한국의 고문관이자 의사인 현봉학이 설전(舌戰) 하는 것으로 영화는 전개됩니다.

저 끝없이 이어진 가난한 나라의 힘없는 백성들을 승선시켜 무사히 피난길에 오르게 하여야 한다는 젊은 의사의 인도적 호소와 전쟁터에서 무기는 제2의 생명인데 어찌 무기를 버릴 수 있느냐는 장군의 논쟁에서 신(神)은 눈물로 애원하는 젊은 의사의 손을 들어주게 됩니다.

이것이 저ㅡ 유명한 흥남철수 작전입니다.

6.25 전쟁 직후의 비참하고 고단한 삶과의 투쟁, 서독광부와 간호사들의 고달픈 이야기, 베트남 파병, 눈물 없이 볼 수 없었던 이산가족찾기운동 등등 구석구석 배어 있는 잊혀지지 않는, 그러면서도 잊고 지내던 지난 날들을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 영화를 보는 동안 여러번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같은 영화를 보면서 많은 관객이 눈물을 흘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눈물의 농도와 깊이는 처한 위치와 자기적 판단에 따라 제 각각 다르리라고 생각합니다.

6.25 전쟁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역사적 격동기를 살아 온 주인공 덕수의 삶은 70을 넘긴 필자가 살아온 과정과 그 궤를 같이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이지 소리 죽여 많이도 울었습니다.

1964년 12월10일입니다. 박정희 대통령내외가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을 위문하고 차관 교섭차독일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박대통령과 독일 뤼브케 대통령이 탄 자동차가 함보른 탄광회사에 도착하자 현관 앞에 도열해 있던 광부들과 간호사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하였습니다.

박대통령보다 10여 미터 뒤따르던 육영수 여사는 어린 간호사들에게 일일이 말을 건넵니다.

“일은 고달프지 않습니까? 가족과의 안부연락은 잘 합니까?”

육여사가 세 번째 간호사와 악수를 할 때 그 간호사는 드디어 울음을 터뜨립니다.

그것이 신호가 되어 여기저기에서 흐느끼고 그 흐느낌의 소리가 점점 커지자 마침내 냉정한 박 대통령조차 연설을 마치지 못하고 손수건을 꺼내고 말았습니다.

강당 안은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이역만리 타국 땅 수천미터의 막장지하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곡갱이질을 해대던 광부들과 치매환자들의 대소변을 받아 내거나 시체를 알콜 솜으로 닦아내면서 힘든 생활을 하던 나이 어린 간호사들의 애환을 보고 들으면서 온 국민이 하나되어 눈물을 흘렸습니다.

1967년 12월 30일, 파월 32제대 병력을 실은 미국선적의 18,000톤급 수송선 실버.스타호가 부산항에서 베트남을 향하여 출항합니다.

부산에서는 겨울에도 눈이 내리는 것을 보기가 쉽지 않다는 말도 헛소리인가 그날은 백설이 스산스럽게 내리고 있었습니다.

5박 6일간, 십자성이 보인다는 남태평양의 험한 바닷길을 항진해 베트남 다낭이라는 항구 외곽지대 허허벌판 모래사장에 하선 합니다.

하늘에는 태극기가 펄럭이고 대기하고 있던 군악대가 애국가를 연주할 때,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동안 주체할 수 없는 두 줄기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애국심이 따로 없었습니다.

낯선 이국땅, 그리고 전쟁터-. 이것은 파월장병의 한 사람이었던 필자의 이야기입니다.

1983년 6월 30일 밤 10:30분부터 KBS에서는 ‘누가 이 사람을 아시나요’라는 제목으로 이산가족 찾기 방송이 시작됩니다.

그해 11월 14일까지 138일간 쉴 새 없이 진행된 방송으로 1만여명의 이산가족이 상봉의 기쁨을 안았습니다.

한 가족이 상봉할 때마다 대한민국이 함께 기뻐하고 같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3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영화 <국제시장>은 이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잊어져 가는 아프고 슬픈 기억을 되살려냅니다.

철없는 자식들이 모여 희희낙락 하는 어느 날, 뒷 골방에서 빛 바랜 아버지 사진을 꺼내든 늙은 아들 덕수는 힘든 세상에 태어나 이 세상 풍파를 우리 자식들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 게 참 다행이라고 독백하면서 “아버지,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 예”하면서 먼 -바다를 응시 합니다.

평생을 가족을 위해 희생하다가 어느덧 백발이 성성한 늙은이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바라보는 주인공 덕수의 모습은 고난에 찬 이 시대를 살아온 우리가 우리에게 던져 보는 헌사(獻辭)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