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타이밍 놓친 최치원 마케팅2015-07-13 10:08:10
최연성 군산대 교수
최연성 교수
필자가 학생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고 당부할 때 즐겨 쓰는 사자성어가 있는데, 인백기천(人百己千)이다. 남들이 백의 노력을 하면 나는 천의 노력을 한다는 뜻이다.
지금부터 1,147년 전 신라 경문왕 시절 서해 어느 항구에서 12살 소년이 청운의 꿈을 품고 당나라로 가는 상선에 몸을 실었다.
인백기천은 이 소년을 떠나보내며 그의 아버지가 일러준 말씀인데, 소년은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여 유학 7년 만에 과거에 급제하고 당나라에서 명성을 떨쳤지만, 막상 고국에 와서는 기량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 이 조기 유학생이 최치원이다.
‘최치원은 현실에서 패배한 대신 그를 주인공으로 한 많은 전설에서 승리했다’고 시인 고은이 평할 정도로 이 땅 방방곡곡에 그의 흔적이 없는 곳이 드물다.
군산도 예외가 아니어서 재미있는 전설 몇 개가 전해오고 있는데, 신시도 월영봉, 내초도 금돈시굴, 옥구향교와 자천대, 백석제 옆의 염의서원, 괴기소설 ‘최치원전’의 무대가 되는 문창마을 등이 대표적이다.
위인은 살아생전에 명망이 높기 때문에 가계나 출생지는 문서로 남기 마련이고 대개 생몰 연도도 명백한데, 최치원은 무슨 사연인지 그렇지 못하다. 말년에 방랑하다 가야산에서 신선이 되었다니 가당키나 한 말인가. 아무리 뒤져도 신선이 되었다는 기록밖에는 찾을 길이 없기에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미스터리로 남겨두자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허나 출생지에 대해서는 군산과 경주 양쪽으로 갈린다. 실학자 서유구의 교인계원필경집서문, 고증학자인 이규경의 오주연문전산고, 이능화의 조선무속고 등에서는 군산사람이라고 하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경주 출생이라고 되어 있어서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는 어렵다.
이런 학자들의 논란에 당사자인 경주시는 어떻게 대처할까? '최치원과 신라오기(新羅五技)'를 주제로 지역특화 문화콘텐츠를 개발하기로 했단다. 나아가 최치원인문기념관 건립과 한중우호공원 조성 등을 통해 최치원이 경주 출신임을 확고히 하고, 향후 인문한류아이콘으로 육성할 계획이란다. 최치원 소재 뮤지컬도 제작한단다.
해운대 동백섬에는 최치원 동상과 시문이 조각되어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경남 창원시 마산항 앞바다 ‘돝섬’에는 내초도 금돈시굴과 같은 전설이 전해오는데, 창원시는 이를 기념하여 1982년 황금돼지 조각상을 건립했다.
최근에는 최치원기념사업회를 발족시키고 테마공원과 고운관광루트를 개발하겠다고 한다.
충남 홍성군에서도 최치원기념사업회가 출범했다. 홍성에서는 최치원이 신선이 되어 사라진 곳이 해인사가 있는 합천 가야산이 아니라 홍성의 가야산이라고 우긴다. 근거는 희박하지만 그 정신은 가상하다.
2007년은 600년 만에 돌아온 ‘황금돼지해’였는데, 재복을 준다는 황금돼지를 보려고 많은 관광객이 창원 돝섬을 찾았다.
하지만 누가 군산 내초도 금돈시굴을 찾는다는 소문은 듣지 못했다. 사실 내초도 금돈시굴은 국가산업단지 개발시에 크게 훼손되어 관광거리로 내놓을 처지도 못된다.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빚어진 일이다.
경주시는 최치원기념관이 있는 중국 강소성 양주시와 2008년에 우호협약을 체결했다. 군산시는 올해 이 도시와 우호협약을 체결했고, 근대역사박물관에서는 ‘최치원 한중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였지만 경주나 창원을 뒤따라가는 듯해서 입맛이 개운치 않다.
모름지기 인물을 내세워 지역의 자랑거리로 삼음은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보편현상이요, 심지어는 며칠 묵어간 것만으로도 기념물을 조성하는 듯 부산을 떨기도 하는데, 학계에서 여기 출신이요라고 인정해도 그런가보다 하는 정도로 무덤덤하니 이런 글을 쓰는 나만 과민성인가.
새만금한중경제협력단지 조성이 한창이며, 군산항과 산동성 석도항을 오가는 국제페리가 증편된다고 한다. 국제공항도 준비 중이며 새만금과 산동성 사이의 해저터널도 논의되고 있다.
역사적 위치뿐만 아니라 최근의 이런 환경을 고려할 때에 최치원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매력적인 지역 아이콘인데 군산시가 자꾸 타이밍을 놓쳐 아쉽다. 전설을 현실로 불러내기 위한 공격적인 문화마케팅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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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미래신문 (km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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