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중한 환송곡이 하늘로 치닫는 장례식이었다.
'한국의 슈바이처'로 알려진 이영춘 박사의 부인이자 사회사업가 김금련 여사가 저세상으로 가시는 마지막 순간의 예식이었다. 

  지난 19일 오전 10시 30분 가족, 교우, 관계자 등 300여명 조문객들의 환송리에 그녀가 여생을 바쳐 일해 왔던 모세스 영아원의 뜰에서 영결식이 조촐하게 거행됐다.
  필자는 70년대 전반, 여사의 막둥이 아들 주영 군의 중학교 담임교사를 했었다.

 그때만해도 아직 세상을 모르는 30대 초반이어서 어쩌면 순간순간의 오만과 독선을 피할 줄 모르는 미숙한 짓을 저지른 것으로 회상된다.

 당시 이영춘 박사께서는 바쁘신 중에도 육성회장으로서 학교경영에 많은 수고를 하셨다.    김금련 여사께서도 몇 차례 조용히 학교를 방문하셔서 상담을 나눴던 적이 있었다.

 두 분 모두 존경할 만한 분이신 줄은 대략 알았었지만 신분에 맞지 않게 평범한 촌로처럼 소탈하고 겸손하셨으며 항상 피로하게 보였다. 

  누군가가 늙어서 일 없이 추억만을 씹다보면 괴로움을 면키 어렵다고 했던가.

 요즘은 내가 그때 그분들의 나이가 되고 보니 젊은 날 진정한 삶의 의미를 모른 체, 겁 없이 건들댔던 일들이 마음 아프게 밀려오곤 한다.

 이러던 차, 어느 중앙일간지의 4면 하단에 김금련 여사의 부음소식이 조그만 하게 기재된 것을 보았다.

 당시에 좀 더 친절히 대해드리지 못했던 일들이 무겁게 번져왔다. 사죄하는 심사로 영결식에 참여했다. 

  여사께서는 1920년 7월 10일 함경북도 북청에서 태어나 평생 가정과 사회 구분 할 거 없이 사랑의 화신처럼 살다가 86세를 일기로 하늘나라로 가신 것이다.  

  그녀는 1943년 원산에 있는 마르다윌슨 신학교를 졸업하고 평안북도에서 전도사로 시무하던 중, 해방을 맞아 1946년 남하하여 이곳 군산에서 전도사로 시무했다.

 당시 이영춘 박사가 농민의 삼고인 빈곤, 질병, 무지 타파운동에 헌신하던중 가정적인 위기를 맞자 1949년 처녀의 몸으로 17년 연상인 그와 결혼 했다.

 러시아의 시인 푸시킨이 사람은 속임수에 넘어가면서 삶을 활기 있게 누리는 것이라고 설파한 평범한 진리를 버리고 여사께서는 스스로 고해의 길을 택한 것이었다. 그리고 열심히 사셨다.    
  이영춘 박사는 자신의 회고록 ?나의 교우록?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김금련은 나를 지탱해준 천사다. 둘째 부인이 젖먹이까지 10명의 자식을 남겨두고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지금까지 숙명으로 알고 경주해온 나의 모든 연구와 인술은 자식들을 위해서 여기서 접어야 하는가?... 하늘에서 천사를 보내주셨으니 다시 열심히 시작하련다."

  雙泉 李永春 박사(1903-1980)는 평북 용강에서 출생해 세브란스 의전과 교토 제국대학을 나온 우리나라 토종 의학박사 1호이시다.

 그는 온갖 명예와 부를 떨쳐버리고 일제의 수탈에서 허덕이는 농민의 건강을 지켜주려고 일제 구마모도 농장의 자혜원 근무를 자원했다.

 광복 후에는 농촌 자녀 교육과 의료인 양성에도 뜻을 두고 하호 여중학교와 군산 간호대학을 설립하기도 했다.

 60년대에 하호여중 배구선수들을 군산여상 배구부로 진학시켜서 전국을 제패하게 한 사실은 유명한 일화이다. 

  이처럼 '슈바이처' 이영춘 박사가 사랑의 인술을 펼치고 연구 활동을 활발히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김금련 여사의 묵묵한 뒷바라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 여사는 이 박사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 생계와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농사는 물론 장사까지 했다.

 자식들이 어느 정도 커나가자 한국 전쟁의 고아들을 돌봤던 모세스 영아원을 맡는 사회사업가로 변신했다.

 이밖에도 군산 YMCA, 한국부인회, 전국여전도회, 등 농촌계몽운동, 여성운동과 사회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했다.

 70년도에는 서울여자대학 이사장을 역임하면서도 산적한 일 때문에 군산을 떠나질 못하고 3년여 동안을 불편한 교통편으로 서울까지 먼 길을 오갔다. 그리고 유택에서 외롭게 사시다가 하늘나라로 승천하셨다.  

  고 김금련 여사는 대한 어머니회 제1회 훌륭한 어머니상(65년), 아동복지 사업 유공자 대통령상(86년), 제15회 전북대상(90년), 제10회 전북애향운동 본부상 등 수 많은 표창을 받으셨다. 

  가난한 나라 몽골에서 초등학교 교장으로서 가신 어머니의 뜻을 펼치고 있는 막내딸 이계심이 가족 고별사에서 목을 놓아 읊어 조문객들도 함께 눈시울을 적셨다.
 "남들은 잘 살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다고도 하지만 엄마께서는 젊은 나이에 사랑의 일을 선택하신 일이 너무나 현명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14명의 자식들은 오늘도 떳떳하게 세계를 누비면서 사랑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승리를 하시고 하늘나라로 가시는 엄마를 기쁘게 환송해 드립니다. 우리도 곧 따라 가겠습니다."

전 군산중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