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시론] '비워내기'에 대하여2020-12-22 09:41:00
최영봉/ 詩人, 藝術評論家
하늘을 올려보다 누군지도 모르고,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게 지내다보니 벌써 해가 바뀐단다. 돌이켜보면, 성장과 발전도 좋지만 때로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천천히 소요유逍遙遊를 즐기며 느긋이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지 싶은데도 그러지 못하고 세월을 보냈다는 생각이다.
싱숭생숭한 마음에 집어든 정진규 시인詩人의 <질문과 과녁>이란 에세이집을 읽다 <비워내기>라는 구절에 눈길이 머문다. 세모 때만 되면 작심삼일作心三日인 줄 뻔히 알면서도, <비움>과 <채움>을 해마다 반복해서 다짐하기 일쑤였으니 말이다.
정진규 시인은 “<비워 내기>를 띄어 쓰면 맛이 왠지 덜하다. 하여, 하나의 명사로 <비워내기>라 즐겨 써왔다.”라 말하고 있다.
“<비워내기>의 <-내기>는 <비우다>는 동사의 활용어미 <어> 밑에 쓰이어, 그 동작을 제 스스로의 힘으로 끝냄을 나타내는 조동사 <내다>의 어간에서 <내>에 다시 명사형 어미 <-기>가 붙어 명사가 된 말이다.
어쨌거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 힘으로 끝냄>이다. 비우는 행위는 누가 도와주지 않으며, 제 힘으로 해야 한다. 때로는 지식이나 힘으로 되지도 않는다. 기존의 관념과 집착을 버려야 비로소 그 무엇이든 새롭게 담기는 것이다.”라는 시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종鐘은 속이 비어 있어야 깊고 그윽한 울림이 멀리까지 퍼진다. 또한 그릇은 <비어> 있어야 무엇이든 담을 수 있지 않은가. 이는 기존의 관념과 집착을 버려야 실체가 보인다는 뜻일 것이다.
비워내야 비로소 보이게 된다. 그렇다. 삶속에서 발견의 근거와 시발점은 항상 내부에 있다.
글을 써나가다 보면 전환점이 되는 꼭짓점을 거치기 마련이다. 그 꼭짓점에 오르지 않고서는 한눈에 안보이니, 그러한 글쓰기를 하지 않고서는 그 지점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때문에 항상 <채우기>와 <비우>는 일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때쯤 우리 주위를 감싸던 어둠은 사라지고 밝은 빛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 빛 속에서 저 <비워내기>의 끝을 바라보면 본래부터 있던 것이 지금도 있을 뿐本有今有이고, 시간이라는 존재는 가도 가도 본래의 자리, 가서 이른다 해도 출발했던 자리行行本處 至至發處라는 불가의 가르침이다.
궁극적으로 실체가 아니라 인연 따라 생겼다 인연 따라 사라지는 무상無常이고 무아無我일 뿐인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제행무상諸行無常이고 제법무아諸法無我라서 우리가 영원히 가질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깨우침에 다름 아니다.
12월은 순우리말로 마음을 가다듬는 한해의 끄트머리 달이라 하여 <매듭달>이라 하고, 1월을 새해 아침에 힘 있게 떠오르는 <해오름달>이라 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우리말인가.
글쓰기든, 세상살이든 마음공부가 필요한 세모歲暮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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