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사용하고 있는 낯이라는 말은 후자에 해당할 것이나 그 도리를 어기거나 벗어났을 때에는 속되게 ‘낯짝’이라고도 함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대부분 낯은 ‘낯부끄럽습니다’, ‘낯이 없습니다’, ‘낯이 서지 않는군요’ 등의 겸손을 내포하는 것이고, 낯짝이라는 말은 사람으로서 잘못에 대한 반성이나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거나, 부끄러움 없이 뻔뻔한 사람, 안하무인 태도의 사람에게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낯을 가졌을까. 낯짝을 가졌을까.

낯은 얇을수록 좋다. 습자지처럼 얇아서 안개에도 금세 젖어 스며들어 버릴 것 같은, 미풍만 스쳐도 금세 바삭거릴 푸른 나뭇잎 같은, 2월 달력 넘기는 소리만 들어도 아지랑이가 되어버리는 고드름 같은 낯 말이다. 즉 앉아야 할 때와 서야 할 때, 고개를 들어야 할 때와 고개를 숙여야 할 때, 가야 할 때와 멈추어야 할 때, 손을 내밀 때와 거두어들일 때 도덕적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낯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하지만 요즘 매스컴을 살펴보면 낯 두꺼운 사람들이 눈에 띈다. 살인을 저지르고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린아이들을 학대하고도 우선 발뺌부터 하는 시설 운영 관리 책임자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상대를 음해하거나 사소한 일조차 헤집어 주변을 어지럽게 하는 사람들 등 이루말할 수 없이 많다. 특히 요즘 선거철이어서 그런지 ‘마타도어’가 난무하여 국민의 눈과 귀가 안녕하지 못하다. 그런 연유일까. 필자에게는 습관이 하나 더 생겼다. 예전에는 상대를 이해하는 수단으로써 상대의 언행에 따라 사람의 깊이를 헤아렸다면, 현재는 진실과 허위에 대응하는 사람들을 분석하면서 그들의 낯 두께를 재는 일이 그것이다. 각각이다. 하지만 어떤 이는 낯의 두께가 수천 미터쯤 되는 기형적 인물로 보여 놀라기도 한다.

생각한다, 낯의 두께가 두꺼울수록 성공할 확률이 높을까. 낯의 두께가 얇을수록 실패할 확률이 높을까. 낯이 얇은 사람의 경우 성공을 위해 낯의 두께를 키워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최선의 도덕적 양심에 기초하여 스스로나 타인에게 떳떳하고 당당하다면. 물론 가능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낯은 성공이 목표가 아니다. 결과가 아닌 현재 진행형으로써의 과정을 말한다. 지금 누군가가 도덕적 양심을 버리고, 훗날의 성공을 위해 낯의 두께를 키우고 있다면, 그건 낯이 아니라 속된 낯짝을 가진 사람이 분명할 것이다.

우리가 동물들에게는 낯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낯짝이라고도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겸손이나 동물의 도리를 요구할 수 없는 까닭이다. 하지만 우리는 낯을 가진 사람이다. 만약 우리가 잘못된 언행으로 시시비비에 휩쓸린다면 그 얼마나 낯부끄러운 일이겠는가.

최소한 한 인간으로서 품격을 유지하며 바른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치욕적인, 낯짝을 지녔다는 말은 듣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내 낯의 두께는 몇 밀리미터일까. 먼저 내 낯의 두께부터 잴 일이다. 반성하고 거듭 반성하면서 나의 낯이 좀더 얇아지기를, 돌아보는 내 그림자도 짙지 않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