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의 진위를 떠나 앞으로 얼마나 많은 말을 들어야 하는지, 또 얼마나 많은 말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면 아찔하다. 하물며 그럴싸한 근거를 바탕으로 다수가 지속적으로 설득 아닌 설득을 할 때, 결론은 의도한 자의 농간에 선량한 그러나 냉정히 말하면 필자 같은 어리숙한 자들이 휘둘릴 수 있음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자의이든 타의이든 인간은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 다수 의견이 안정적이라는 쪽에 등을 대기 쉽다. 이것은 훗날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쉬운 선택의 방법이기도 하다.
가을, 쓸데없이 무언가, 누군가가 그리운 계절이다. 그 무언가를, 그 누군가를 그리워하지 않으려고 먼저 계절을, 가을을 만나러 간다. 이 강박적 조급증에 우선 가까이 있는 새만금방조제 쉼터 코스모스 밭으로 향했다. 코스모스 밭 중간쯤 이르렀을 때 “처서가 지나면 모기의 입도 삐뚤어진다”는 속담이 무색할 정도로 모기떼가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여기저기 가려움을 동반한 피부가 빠르게 부풀어올랐다.
그날은 월요일이었지만 마침 개천절로 병원이 휴무여서 밤새 가려움과 부종浮腫에 시달려야 했다. 엎친 데 덮친다고 다음날 화요일은 오전 강의가 있는 날이라 아침 일찍 진료를 받을 수도 없었다. 예약해 놓고 오후에 진료받을 생각이었다. 7시에 기상하여 출근 준비를 한 뒤, 7시 50분쯤 근처 G피부과에 갔다. 이 피부과는 오전 진료이든 오후 진료이든 예약하지 않으면 진료를 받을 수 없을 만큼 늘 분주하다. 그런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좁은 통로에 줄을 서 있는 사람들, 신문지를 깔고 앉은 사람들로 붐볐다. 간호원은 8시 30분에 출근하여 예약자 명부를 내놓고 진료는 9시부터라고 단골인 듯한 사내가 설명했다. 대기자 수를 헤아려보니 필자는 스물일곱 번째였다. 문제는 간호사가 문을 여는 8시 30분까지 소요 시간이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30여 분 동안의 무방비 상태에서 낯선 이들이 쏟아내는 말들을 들어야 하는 것은 참으로 고역이었다. 정치 문제며 일상의 이야기며 어느 병원과 어느 의사의 험담이며 서울 어느 병원에 명의가 있다는 둥, 또 환자가 이리 많으면 대기자들을 위해 통로 벽 쪽에 의자를 놓아 환자를 배려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모두 필자 어깨 강의 가방에 매달려 칭얼댔다. 점점 무거워지는 강의 가방을 달래줄 수도 없어 필자는 자꾸 시계만 들여다 보았다.
말은 소통의 도구일 때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한다고 본다. 일방적인 주장이나 의견은 자제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러한 말은 닿는 곳이 없으므로, 부메랑되어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것임을 안다면.
한편 생각한다, 그리움에도 말이 필요할까. 말로써 이를 수 있는 것일까. 이른다면 무엇을 더 말해야 하나. 아니다. 섣불리 그립다고 말할 일 아니다. 말이 없는 곳에 그리움이 존재했을 때 비로소 정제된, 무한한 그리움이 있는 것이다. 다만 그 그리움은 깊은 쓸쓸함과 통증으로 버무려진 가려움 같으므로 견디는 수밖에. 모두 잘 버텨내시라, 이 가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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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미래신문 (kmrnews@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