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겨우 바위 위로 올랐을 때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고 한동안 정신이 나간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윽고, 겨우 정신을 차리고 내려다본 방금 미끄러졌던 바위 아래로 시퍼런 바닷물이 흰 이를 드러내고 세찬 소용돌이를 치며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구나. 아니 죽을 뻔했구나. 하나님, 조상님 감사합니다. 천만다행으로 살았으니 무슨 말을 하랴. 그저 감사하다는 생각뿐이었다. 

  이후 하마터면은 평생을 두고 내 주위를 맴돌았다. 급하다고 무단횡단하다 하마터면 차에 칠 뻔했다. 무딘 칼로 억지로 나무를 다듬다 하마터면 칼날에 손가락을 크게 베일 뻔했고, 내리막길에서 자전거 페달을 너무 세차게 밟아 하마터면 개울에 처박힐 뻔했다. 별것도 아닌 것으로 말다툼하다 하마터면 주먹다짐을 할 뻔했고, 추운 겨울날 친구들과 불장난하다 하마터면 큰 불을 낼 뻔도 했다, 이렇듯 하마터면은 수시로 나를 놀라게 하고 심지어 금전적인 손해를 보게 하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통을 주었다.

 어느 날부터 차츰 내 안에서 하마터면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니 잊혀 갔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설마’라는 괴물이 들어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설마는 내 삶 속에서 일어나는 나쁜 일, 억울한 일, 끔찍한 일에 적극 관여했다. ‘다른 사람은 다 당해도 설마 나한테 그런 일이 생기겠느냐’며 설마는 모든 나쁜 일에는 나는 예외라 믿으라는 식이었다. 결국 설마의 프레임에 갇혔고 드디어 큰일을 몇 차례 되게 당하고 말았다. 그제야 정신이 들어 “설마가 사람 잡는다.”라는 옛말을 중얼거렸지만 때는 이미 늦었고 남는 것은 후회와 한숨 속에 고통스러운 상처와 미련만 남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틀림없는 것은 하마터면은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아주 많은 교훈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큰일 날 뻔한 뒤에는 예외 없이 ‘천만 다행’과 ‘예방’이라는 명제가 매사 모든 일에 항상 조심하고 주의하라면서 긍정적인 메시지를 보냈다. 나아가 다시는 잘못된 행동이나 마음을 반복하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장도 날렸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성탄절과 연말연시를 앞두고 혹시 하마터면을 잊고 들뜬 마음이 설마를 믿는 우를 범할까 염려된다. 극히 이기적인 설마는 언제 어디서 튀어나와 각종 안전사고를 일으킬지 걱정된다. 설마의 유혹에 빠지면 자연재해나 천재로 변명할 이유는 존재하지 않고 모든 게 무조건 인재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매사 아슬아슬 위태위태하지만 그럴수록 하마터면의 예방과 경고라는 숨은 가치를 되새김질하려 한다. 하마터면을 거울삼아 좀 더 슬기롭게 좀 더 지혜롭게 미리미리 준비하고 차분하게 행동하여 설마의 유혹에 빠지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 본 내용은 본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