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은파호수에 산책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필자는 가파른 삼거리 위쪽 부근에서 녹색신호 대기 중이었고, 아래쪽에는 등이 땅에 닿을 정도의 할머니 두 분이 횡단보도를 막 건너고 계셨다. 두 분 중, 등이 조금 덜 굽은 할머니의 오른손은 지팡이를 짚고 있었고, 왼손은 등이 심하게 굽은 할머니의 오른팔을 붙든 채였다. 지켜보는 눈이야 횡단보도를 건너고 계신다고 할 수 있겠지만, 횡단보도가 두 할머니를 붙들고 있다는 느낌이 더 지배적이었다. 보폭이 1센티미터나 될까말까였던 것이다. 게다가 더딘 한 걸음 걷고 멈춰 쉬기를 반복하셨다.

그렇다. 혹자는 아무리 봄날일지라도 민폐가 될 저 정도면 외출을 삼가야 되지 않겠느냐고 핀잔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신호 대기를 하고 있는 운전자의 경우, 투덜대거나 클랙슨을 누르며 감정을 표출할 수도 있을 듯했다.

필자는 운전자들이 클랙슨을 누를까 봐 걱정되었다. 그랬을 경우 두 할머니께서 놀라시거나 급히 서두르시다가 넘어질 것 같아서였다. 필자는 신호에 갇혔다가 풀렸지만 못 박힌 듯 서서 그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사이 신호가 두 번 바뀌었다. 두 할머니는 여전히 횡단보도를 건너고 계셨고, 운전자들은 클랙슨은커녕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놀라웠다. 물론 러시아워가 아닌 것도 있었지만 머릿속에서는 운전자들의 제대로 된 ‘인성’, 높은 ‘시민의식’, ‘동방예의지국’ 등등이 스쳐갔다. 그러면서도 필자의 시선과 귀는 온통 운전자들의 행동과 두 할머니에게 쏠려 있었다.

마침내 횡단보도를 건너 인도에 안착한 두 할머니는 그만 자리에 주저앉다시피 몸을 부렸다. 드디어 신호를 받은 차량의 운전자들이 하나둘씩 미끄러지듯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야말로 봄이었다. 어찌 지상에 뿌리를 내린 꽃만이 꽃이랴. 인내심으로 배려한 운전자들이야말로 진정한 봄꽃이었다. 또한 혼자의 몸으로도 바로서기 힘든 할머니가 지팡이를 의지한 채, 자신보다 더 힘든 할머니를 부축해 준다는 것 또한 엄동설한 견뎌내 핀 어떤 꽃보다 아름다웠다, 향기로웠다.

 형형색색 꽃 핀다고 그 꽃만 꽃이랴. 그 꽃의 향기만 향기랴. 인내로 배려로 피어난 꽃이야말로 진정한 꽃이 아니겠는가. 바람직한 향기 아니겠는가.

 필자는 횡단보도를 건너 인도를 따라 걸으면서 생각했다. ‘나는 진정으로 꽃이었던 적이 있나. 바람직한 향기를 지녔던 적 있나’를. 꽃도 아니면서 향기도 없으면서 봄, 가을 없이 꽃만 찾아다니질 않았던가. 향기만 좇지 않았던가. 햇살은 빛나고 천지삐까리 꽃들은 피어나 향기로웠으나 마음 한 켠 꽃 하나 피워내지 못한 마음 그늘은 서늘하기만 했다. 여전히 그러하다.

 또 다른 봄, 자연이 주는 깨달음과 사람이 주는 깨달음을 통해 나를 갈아엎고 새로운 나를 심는 일, 이것이 진정 이 봄에 할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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