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가뭄으로 제대로 농사를 짓지 못해 흉년이 든 해였다. 탈곡하면 대부분 쭉정이로 날아가고 남은 알곡은 농부들의 한숨으로 덮을 정도였다. 방아를 찧고 보면 뉘가 너무 많아 뉘 속에서 쌀을 골라내는 격이었다. 뉘반지기다. 뉘반지기는 도드미로 쌀을 골라내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옛 어머니의 손길을 더 바쁘게 만들었다.

  쌀밥 한 공기 속에서도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끝까지 버티는 뉘의 끈질긴 모습에서 알 수 없는 진한 생명력을 느낀다. 그렇다고 뉘를 미화하거나 쌀과 동일시하는 우를 범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골라내야 할 하찮은 존재지만 뉘 같은 미완성 물질이 때론 부각되는 것은 한 톨의 곡식이라는 또 다른 가치를 부여해 훗날 삶을 경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줄 수도 있어서이다. 

  지금은 정미 시설이 완벽하여 뉘는 물론 싸라기나 돌까지도 거의 골라내고 있다. 어쩌면 잘 정제된 하얀 쌀밥이라서 뉘를 고르는 일은 추억의 그 시절이 되어 교훈적인 이야기를 나눌 기회조차 사라지니 아쉬울 뿐이다. 이제라도 뉘 한 알이라도 아까워 일일이 까먹던 시절의 진솔함을 통해 식량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라 여겨진다.  

  삶에서 뉘만도 못한 존재를 헤아려본다. 사람을 뉘에 비교한다는 것이 다소 비약적인 발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못된 짓을 하는 걸 보면 한 톨의 뉘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뉘라면 당장 골라내 버리면 되지만 사람 같지 않은 인간이라면서도 뉘처럼 골라내 버릴 수도 없으니 어찌해야 하겠는가. 잘못을 깨닫고 후회하며 한 방울의 눈물이라도 보인다면 그나마 위안을 삼고 싶은데 오히려 당당하고 뻔뻔스러우니 안타깝고 답답할 노릇이다.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우울한 사건을 접할 때마다 아무리 이해하고 용서하려 해도 도저히 그런 마음이 우러나지 않는 것은 나만의 잘못된 편견일까.  

  내 마음속에는 어떤 모양의 뉘가 들어 있는지 생각해 본다. 남의 결점은 잘 찾아내고 지적을 하면서도 정녕 나 자신의 결점은 모른 체하거나 외면하며 살아오지 안했는지. 다른 사람 눈과 마음에 보이는 내 뉘를 스스로는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 있게 말하기가 쉽지 않다. 늦게나마 사죄하는 심정으로 내 마음속의 뉘를 골라내며 살리라.

 그러기 위해선 내 안에 자리하고 있는 뉘를 가려내어야 할 것이다. 쓸모없다고 그냥 버릴 것이 아니라 껍질을 벗겨내는 고통을 감수해야겠다. 그래야만 참다운 진가를 품어내는 진정한 쌀 한 톨로 탈바꿈할 것이다. 

  잘못된 사실을 그저 묻어 버리기보다는 인정하고 그 대가를 치르는 과정을 겪으면서 새로이 다져진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변화가 아닐까. 끼니때마다 뉘를 고르느라 저리는 다리를 번갈아 주무르며 밥을 지으신 옛 어머니의 정성 속에는 뉘 같이 버림받는 사람은 되지 말라는 숭고한 염원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사는 동안 적어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아름다운 삶을 살고 싶다. 그래야만 더불어 사는 사람들 속에서 풍요로운 삶을 함께 누릴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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