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일보는 이러한 약속이 20년 만에 지켜진 일화를 보도했다.

 20년이라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사는 데 몰두하다보면 의무 사항이 아닌 다음에야 쉽게 잊을 수 있는 일이다. 의무 사항일지라 해도 잊기 쉬운 긴 시간이었던 것이다.

 이장규 선생님, 그는 2004년 전남 영암초 6학년 2반 담임을 맡았다. 그는 2005년 1월 졸업식날 제자들에게 "20년 뒤 오늘, 학교 운동장에서 만나자.”라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약속들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는 약속임이 틀림없다. 절친인 친구들 사이에 10년 뒤, 혹은 20년 뒤 어디에서 만나자거나, 연인들끼리 헤어지면서 몇십 년 뒤 서울역 시계탑 아래에서 만나자고 했다거나, 유행가 가사처럼 ‘첫눈이 내리는 날 안동역 앞에서 만나자’ 등등의 많은 이야기들이 있어 왔다. 과연 그들은 다양한 직업군이 존재하는 현대에서 한때 낭만적이었던 그들의 약속이 지켜졌을까. 물론 필자는 그들이 했던 약속을 서로 잊지 않고 추억을 좇아 재회하기를 희망하는 쪽이다. 그러나 그건 어쩌면 생각에 그칠 일일지도 모른다. 각각의 개인사정과 형편과 다수의 기대치와 현재의 자신의 위치 등을 고려한다면 마음과 같지 않아 실행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물론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이야 건강이 최고의 재산이며 가치라는 걸 알기에 기타 그 무엇도 재회를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진 않을 것이다. 

 여튼 당시 6학년 2반 영암초 제자들은 20년 후의 약속을 잊지 않고 2024년 1월 1일 선생님과 재회를 이루었다. 10대의 제자들은 이미 30대가 되어 있었다. 사실 요즘은 학생의 인권이 존중되면서 상대적으로 교사의 권위는 그만큼 추락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로 인해 가슴 아픈 사연들이 전해오는 마당에 사소한 약속일지라도 선생님의 말씀을 모셔 모교 운동장에 모인 제자들의 밝은 미소를 보는 것은 이 땅의 작은 빛이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사제지간에 남아있을 한 줄기 빛을 보는 듯하여 가슴 한켠이 찡해 왔다. 

 그냥 잊혀질 수 있는 약속이었다. 하지만 선생님과 제자들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까. 그날을 놓치지 않기 위해 어떤 약속은 앞당기고 혹은 뒤로 미루었을까를 생각하니 필자가 가볍게 했던 약속, 지키지 못했던 약속들이 부끄럽기 그지없다.

 세상에 하찮은 건 없다. 모두가 다 나름 가치있고 소중하다. 하물며 언어라는 수단을 통해 고리를 만들어낸 약속이야말로 함부로 풀어선 안 될 일이다. 그만큼 언어를 소중히 다뤄야 하고 약속이라는 그 고리를 잊지 않도록 쓰다듬고 빛을 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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