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결코 우리의 삶에 불편한 계절만은 아니다. 죽은 것 같은 나무들의 잎눈과 꽃들의 꽃눈은 봄의 만찬을 위해 한겨울에 철저한 준비를 한다. 초롱초롱한 눈망울들의 희망찬 졸업식이 대부분 겨울에 열린다. 꽁꽁 언 땅에서도 파릇파릇 자라는 보리 싹을 보라. 삼라만상이 죽은 듯 잠자는 것 같이 보이는 겨울이야말로 봄, 여름, 가을 못지않게 분주하고 바쁘고 생기 있게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 느낄 수 있다.

   이런저런 걸림돌로 몇 년을 두고 결심에 머물렀던 왼 무릎 수술을 올겨울에 받기로 결단을 내렸다. 일월 초 군산의료원을 찾았다. 수술실로 향하고 “마취합니다.”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꿈속에서 헤매다 눈을 뜨니 “수술 잘 되었습니다.”라는 의사 선생님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회복실로 실려 가면서 마취가 풀리고 통증이 성난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726호 병실 생활은 생애 처음으로 경험하는 소우주였다. 대부분이 무릎, 어깨, 허리, 발목 등을 수술한 환자들이었다. 이들의 모습, 나이, 성격, 태도, 말투가 매우 다양했다. 심한 통증으로 괴로워하는 끊이지 않는 신음과 걸핏하면 짜증 섞인 표정과 언행, 심한 코골이와 TV 시청 선택의 고집과 갈등은 또 다른 아픔이었다. 특히 입원 규칙을 어기는 무분별한 행위와 근무자를 함부로 부르거나 거칠게 대하는 일부 환자의 태도는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입원환자들을 위해 묵묵히 근무하는 간호사, 간호인, 요리사, 청소원 등 임직원들의 헌신적인 활동은 생각 의외였다. 고약한 대소변 처리, 불편한 머리 감기기, 시시때때옷 갈아입히기, 밤낮없이 주사 주고, 체온 재고, 약 챙겨주고 식사 차려주는 모습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잔잔한 감동 그 자체였다. 몸과 마음이 약해진 환자들의 벅찬 간호 활동을 하는 그들은 분명 ‘천사’였다. 천사는 하늘나라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보수를 받기 때문에 마땅히 근무하는 그 이상의 사명감과 책임이 몸에 밴 듯했다. 볼 때마다 박수쳐 주고 싶었다. 너무 고마워 무조건 선생님이라 불렀다. 어느 아들딸이 제 부모를 이들처럼 헌신적으로 보살핀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강남 갔던 제비가 다시 돌아온다는 춘 3월이다. 겨울의 끝자락 2월이 윤달이라며 하루를 더 버티었지만 이제 서서히 꼬리를 접었다. 남녘엔 이미 봄이 왔다는 소식이다. 모두가 기지개를 켜며 벌써 희망찬 봄맞이 준비에 마음 설렌다. 이 희망찬 봄날을 맞이하면서 아직도 겨울나기에 헤매고 있는 ‘의료인력 증원’사태를 보면 가슴 철렁 내려앉는다. “너 아파 보았니?” 아프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아무것도 소용없다. 오직 아픈 몸이 빨리 낫기만을 절실히 기도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요즘 제일 듣기 거북하고 속상한 것은 ‘강 대 강’이라는 말이다. 누가 누구를 위해 버티기를 하고 있을까. 제발 이기적인 속마음 감춘 ‘저울질’ 그만하자.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다면 먼저 손 내밀자. 하루속히 이 난국이 빨리 해결되어 고통 받는 환자들의 겨울나기가 잘 마무리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평소에 무심코 지나던 의료원의 입원 생활은 전혀 다른 새로움의 시작이었다. 깨끗하고 잘 정비된 병원 실내 환경 유지와 병실 침상 바닥마다 2차 낙상 사고 방지를 위한 안내 스티커가 차분한 마음을 갖도록 다독여 주었다. 정성이 깃든 벽에 부착한 조그마한 게시물 한 장이 신선한 믿음을 주었다.


※ 본 내용은 본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