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먹이를 구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토끼가 잘 먹는 토끼풀은 싱싱하고 잘 자란 곳을 찾아다니며 골라 왔다. 토끼가 좋아한다 해서 아카시아 잎을 따다 가시에 손이 찔려 피가 나기도 했다. 칡잎이 토끼에게 좋다는 말을 듣고 여름철 땡볕에 가시덤불을 헤집고 숲속으로 들어갔다가 벌 떼에 쏘여 눈덩이가 탱탱 부은 적도 있었다. 그래도 토끼 기르는 재미에 하루하루가 즐겁고 신났다. 

  어느 날 아침, 늦잠을 자는 바람에 지각할까 봐 허둥대며 학교에 갔다. 아침에 일어나 토끼 밥을 주지 않고 학교에 오는 바람에 토끼에게 미안했다. 공부 시간 내내 토끼 생각에 마음이 불안했다. 학교 공부가 파하자 바람개비보다 더 빠르게 집을 향해 달렸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토끼장에 토끼가 없다. 혹시 토끼장 문이 열려 토끼들이 먹을 것 찾아 돌아다니는 줄 알고 집 주변을 열 바퀴는 더 돌았다. 그러나 사라진 토끼의 그림자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토끼를 도둑맞고 허전한 마음으로 집 주위를 어정거리는 데 뒤란 울타리에 난 개구멍이 자꾸 눈에 거슬렸다. 강아지가 들랑거릴 때 설마 했는데 그곳으로 도둑이 들어와 토끼를 가져간 것이었다. 결국 방심으로 망가진 울타리의 개구멍이 화근이었다. 훗날 군대 생활을 하면서 야간 경계근무를 설 때 적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든든한 철책을 보니 불현듯 도둑맞은 토끼 두 마리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때 이런 철책 울타리였다면 도둑은 맞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토록 허술한 울타리 때문에 도둑맞은 토끼 두 마리는 어른이 되어서도 오래도록 내 머리에서 쉽게 지워지지 안했다.   

  울타리는 ‘보호’라는 의미가 더 짙다. 말하자면 강자로부터 약자 돌보고 감싸주는 것이리라. 어느 시골 집 닭장에 불이 나 다 타버렸는데 불에 타 죽은 어미닭 날갯죽지 밑에 병아리들은 모두 살아있었다 한다. 어미닭은 그 뜨거운 불에 타 죽으면서도 끝까지 병아리들의 울타리가 되어 준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도둑맞은 토끼를 위해 개구멍 울타리를 제 때에 고치지 않은 나로서는 한없이 부끄러울 뿐이었다.

  이 세상에는 강자보다 약자들이 너무나 많이 존재한다. 어린이, 노인, 산모, 장애인 그중에서도 질병과 상병에 시달리는 환자들은 아주 취약한 사회적 약자다.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참느라 날밤을 지새우는 환자들에게 필요한 울타리는 무엇일까. 연약하고 허약해진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울타리는 어떤 것일까. 

  지금 환자와 그 가족들은 물에 빠져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절박한 심정이다. 밥 한 숱 갈 떠 제대로 목구멍으로 넘기기조차 힘들어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당장 어머니의 포근한 품 같은 든든한 울타리도 좋지만 제 때에 주사 맞고 수술해 줄 울타리가 더 절실하다. 망가지는 의료 세계의 울타리를 손 맞잡고 서둘러 빨리 고치자. 서로가 네 탓만 하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큰 재난에 직면할 수 있다. 후회는 항상 늦다.

※ 본 내용은 본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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