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인간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이다. 교육이나 환경, 혹은 종교적, 도덕적 양심에 의해서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며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하지만 ‘항상성’에 의해 다시 회귀하고 다시 노력하는 과정에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며칠 전 친구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친구는 애먹이던 자신의 가게가 생각지 않게 팔렸다는 이야기며, 동창회 소식, 아들과 며느리에 대한 이야기며 가게가 팔려서 시간이 나니까 또 다른 가게 상호를 지어준 내게 밥을 사겠다는 말까지 덤으로 했다. 이 중 가장 길게 대화를 나눈 부분은 친구와 동창 사이의 ‘거리’ 이야기였다. 친구는 이제 동창회에 나가지 않겠다고 했다. 친구와 필자는 다르다.

 필자는 어느 동창회든 가입 내지는 활동을 하지 않는 반면, 친구는 바쁜 일과 속에서도 틈을 내어 동창회에 자주 참석하는 적극파인 것이다. 그런 친구에게 왜냐고 물었다. 예전에 동창의 부고 소식을 대하는 그들의 여러 모습이 이유였다.

 같은 모임을 통해 희노애락을 나눴으면서 정작 동창의 부고장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장례식장에 가지 않았던 일을 떠올렸다. 친구는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본 것이다. 그러니까 만약 자신의 부고장을 동창회에 알렸다 한들 예전의 경우처럼 그들이 똑같은 행동을 하리라 짐작해 보는 것이다. 그러기에 앞으로는 친구와 동창을 구분지어야겠다는 것이다. 틀린 말 아니다.

 그렇다면 친구의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가족과 가족이 모두 아는 사이여야 할까? 속마음 터놓고 지내는 사이여야 하나? 가족 애경사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사이여야 하나? 기쁜 일, 슬픈 일에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위로하는 사이여야 하나? 아님 마음 크게 내어 목숨이나 전 재산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을 사이일까?

 그렇다. 이 중 두어 개 정도만 나눌 수 있어도 친구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상대적으로 두어 개 정도도 되지 않는다면 친구가 아닌 동창의 관계로 남는 것이 되리라. 

 현대는 복잡하다. 그만큼 마음도 복잡하다. 다만 필자의 과제는 간략하게 살아보는 것이다. 말도 행동도 글도 인간관계도. 이에 긴 말은 2014년 발표된 유안진 시인의 시 같은 수필로 갈음한다.

지란지교를 꿈꾸며/유안진

저녁을 먹고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놓고 열어 보일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제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질 수 있으랴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그가 여성이어도 좋고 남성이어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품이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때로 약간의 변덕과 신경질을 부려도

그것이 애교로 통할 수 있을 정도면 괜찮고,

나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히 맞장구 쳐주고 나서,

얼마의 시간이 흘러 내가 평온해지거든

부드럽고 세련된 표현으로 충고를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싶진 않다

많은 사람과 사귀는 것도 원치 않는다

나의 일생에 한두 사람과 끊어지지 않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으로 죽기까지 지속되길 바란다

(중략)

나는 반닫이를 닦다가 그를 생각할 것이며,

화초에 물을 주다가, 안개 낀 아침 창문을 열다가,

가을 하늘의 흰 구름을 바라보다가, 까닭없이 현기증을 느끼다가

문득 그가 보고 싶어지며, 그도 그럴 때 나를 찾을 것이다

(하략)


※ 본 내용은 본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