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부부가 단둘이 살 땐 넓게만 보였던 집이 오늘따라 갑자기 좁아진 느낌이다. 추석 명절을 맞아 멀리 떨어져 살던 아들딸 내외와 손주들이 모처럼 다 모였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만난 동기간들은 인사부터가 좀 특이하다. 간단한 안부 인사에 이어 서로의 아들딸에 대한 칭찬, 격려, 부러움 뒤에 속상함과 애정 어린 남편 흉까지 뒤범벅되어 시끌벅적한 속성이 있다. 

  차가 밀린 탓에 늦은 점심상을 차리는 아내의 손길이 분주하다. 아내의 성화에 이른 점심을 챙겨 먹은 곰 영감은 프로야구 중계에 눈을 떼지 못한다. 아내는 아이들 편하게 자리를 비켜 주었으면 하는 눈치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있으면 자유스럽지 못하니 그런 것 같다. 내심 섭섭하나 모처럼 만난 동기간의 좋은 분위기 깰까 싶어 헛기침 한 번 하고 밖으로 나온다. 

  뒷짐 지고 고양이 걸음으로 살며시 다가가 건넌방 문을 열어본다. 중학생 손주 녀석은 스마트폰에 정신이 팔려 움직임조차 없다. 초등학생 녀석들은 이불을 깔아 놓고 상기 된 얼굴로 씩씩대며 밀고 당기느라 떠들썩하다. 하나하나 꼬집어 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워 함께 놀아 주고 싶지만, 아이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한창 무르익은 분위기 살려주려 빙긋이 웃으며 발길을 돌린다. 

  몇 번이나 망설이다 단골 주막을 찾아간다. 평소엔 발소리만 듣고도 쪼르르 다가와 코맹맹이 소리로 반기던 팽 여사가 오늘따라 시큰둥하다. 막걸리 한 병과 김치 조각이 담긴 접시를 성의 없이 탁자 위에 내놓는다. 추석이라 고향에 내려온 젊은 애들이 올 시간이니 얼른 마시고 댁으로 가란다. 그렇지 않아도 속이 허해 은근히 위로나 받으려고 찾아온 곰 영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술안주에 달라붙으려는 파리를 냅다 숟가락으로 내리친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온다. 눈 부신 햇살에 잠시 방향 감각을 잃는다.

  고샅길 바람 독에 서서 먼 산을 바라본다. 오늘따라 유난히 맑고 깨끗한 하늘 높이 여객기 한 대가 흰 띠를 길게 그으며 나타나더니 서서히 사라진다. 저 비행기는 얼마나 많은 사연을 싣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까. 여느 때보다 느리게 날아가는 것 같다. 한 덩이 찬바람이 가슴속을 헤집고 파고든다. 갑자기 외로움이 밀물 되어 쏴 하고 밀려든다. 왠지 몸이 뻐근하고 손발이 저리다. 괜히 눈시울이 맵다. 

  결혼한 딸이 새것으로 바꾸어 준다 해도 헛돈 쓰지 말라며 소중히 간직한 폴더 폰을 꺼내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나다. 지금 뭣하냐?” 

 “뭣하긴 전화 받지.”

  동구 밖 느티나무 아래 의자에 어깨를 맞댄 두 사람이 조각상처럼 앉아있다. 멀리 들녘을 가로질러 달리는 기차가 이내 산모퉁이를 돌아 곧장 사라진다. 

  “막차라서 더 빠르게 달리나.” 

  “글쎄다, 그렇다고 세월보다 빠르겠어.”

    산새 두 마리가 날아와 느티나무 품에 안긴다. 의자에서 일어나 마을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두 사람 뒤로 저녁노을이 막을 내린다. 

 ※ 본 내용은 본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