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박에서 반닫이 크기 만한 궤가 나오는데 그 궤 속에 가득 담긴 것이 흰쌀이었다.

삼순구식(三旬九食) 가난에 시달려 쌀 구경 한 지가 옛날이라 서 말이 넘는 쌀로 한꺼번에 밥을 지어 스물일곱 식구들이 둘러앉아 퍼 먹는다.

옛날 광에 쌓인 쌀가마나 뒤주 또는 쌀독에 담긴 쌀의 양이 빈부의 척도가 되던 시절 쌀은 단순한 식량이 아니었다. 금리는 쌀로 따져 화폐를 대신했다.

쌀은 한국인의 삶을 지배하는 주곡이자 국가 경제의 핵이기도 했다.

지금 쌀이 천덕꾸러기가 되고 있다.

농사가 해마다 풍년이 드는데 소비량은 갈수록 줄어들면서 재고가 늘어나고 있다.

당장 다음날 끼니를 걱정해야 했던 때가 먼 옛날의 이야기도 아니다.

70년대 까지만 해도 쌀 한 톨이라도 더 생산하는 것이 국가의 목표였다. 다수확 품종을 개발하고 분식 장려운동까지 폈다.

쌀을 덜 소비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던 점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이다.

생산은 늘어나는데 소비가 줄면서 엄청난 수급 불균형을 불러오고 있다.

이 때문에 쌀값이 떨어지고 농가의 소득기반이 위협받는 악순환이 된다.

정부의 정책 또한 정반대로 바뀐다. 증산 정책에서 생산을 조정하는 쪽으로 선회하는 것이다.

쌀은 단순히 단일품목의 수급문제로 풀 수는 없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전체 곡물자급률이 여전히 30%를 밑돈다는 점에서 식량안보의 문제가 된다. 어쩌다 쌀이 본질적인 가치와는 상관없이 이리 밀리고 저리 차이는 신세가 되었나 싶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쌀은 우리 주식이며 모든 식량의 으뜸이자 상징이다. 식량하면 쌀이고 쌀 하면 식량으로 통한다.

한의학에서는 사람의 몸이 정(情), 기(氣), 신(神), 혈(血)로 구성되는 것으로 본다.

정은 물질, 기는 기운, 신은 정신, 혈은 기름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사람이 살려면 곡기(穀氣)가 있어야 한다.

같은 말이지만 죽기로 작정한 것을 곡기를 끊는다 한다.

사람의 정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곡기인데 그게 곧 쌀이다.

입맛을 자극하는 먹을 것이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밥이 우리의 주식 아닌가!

올해 국회에서 농민을 위한 법안이 통과되었다.

쌀 생산량이 평년보다 3~5% 이상 늘어나가나 쌀 가격이 5~8% 넘게 떨어질 경우 초과 생산량을 정부에서 의무 매입하도록 하는 개정안에 대해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 ‘남는 쌀 강제매수법’이라며 대통령이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제대로 된 토론 없이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다며 야당을 직격했는데 그러면 쌀값을 어떻게 안정시키고 확보할 것인지 농민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 농민에 대한 존중이 없으면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가치가 훼손된다.

농업 노동을 가벼이 여기면 삶의 뿌리가 말라간다.

정부 정책에 이래저래 농민들의 어려움과 걱정만 늘어간다. 쌀값이 떨어지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쓴 시(詩)가 있다.

‘밥은 하늘입니다’(김지하 시인)의 한 구절이다.

“하늘의 별을 함께 보듯이/ 밥은 여럿이 같이 먹는 것/ 밥이 입으로 들어갈 때/ 하늘을 몸 속에 모시는 것” 한국인에게 쌀은 생명이고 하늘이다.

생명의 마지막 전선에 아파하고 있을 농민들에게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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