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고래 힘찬이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다른 고래 친구들과 함께 자신들의 놀이터에서 부드러운 물살과 살갗에 와 닿는 찬란한 햇빛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들의 놀이터는 스펙트럼처럼 여러 빛을 내며 다가오는 햇살과 에메랄드 빛 물결로 뒤덮여 있었다.
 
고래들은 부모 고래가 얼마나 멋진 고래인지 서로 자랑하면서 자신들도 미래에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고 매끄러운 살결과 거대한 몸집을 가질 거라며 떠들어 댔다. 힘찬이는 또한 자신의 미래를 상상했다.

 “그래, 내 이름에 걸맞게 나는 큰 몸집으로 이 세상 모든 바다를 모험하고 정복하는 그런 포부를 가진 고래가 될 테야!”

 부모님도 힘차게 살라고 힘찬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셨다. 친구들이 뭐라고 떠들어 대는 것도 잊은 채 힘찬이는 혼자만의 달콤한 꿈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쿵!”  

 갑자기 고요했던 바다 속에서 엄청난 파동이 일어났다. 힘찬이는 놀라서 황홀한 미래 상상을 접고 친구들과 함께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고 소리가 난 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눈앞에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엄청나게 거대한 바다 속 생물체인지도 구분이 가지 않는 것이 검은 물을 내뿜고 있었다.
 
그 검은 물은 힘찬이 쪽으로 파도를 타고 느린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악마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서 누가 보더라도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악마임이 틀림없었다.

 “야, 도대체 저게 뭐야?” 힘찬이가 놀라서 물었다.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인간들은 상상도 못할 만큼 큰 배에 검은 보석을 싣고 다닌대. 내 생각엔 아마도 저 검은 물이 그 보석을 말하는 것 같아.”

순간, 어린 고래들을 부르는 엄마 고래들의 신호가 들려왔다.

 “얘들아, 나중에 다시 모이자. 난 저것들이 진짜 무엇인지 밝혀내야겠어.”

 힘찬이가 영롱한 눈을 반짝이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다음 날, 힘찬이와 친구들이 다시 만났을 때, 검은 보석이 위험한 물질이라는 의심을 떨칠 수 없었다. 그들의 고향이고 삶의 터전인 바다, 황홀하게 해 주던 신비로운 바다 세계가 점점 이상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간들의 검은 보석은 시간이 지나도 계속해서 다른 곳으로 띠를 만들며 이리저리 흘러 다녔다. 마치 영혼을 수습하러 다니는 것 같았다. 용감한 힘찬이가 검은 물을 향해 돌진하려는 순간 “꽥!” 하고 소리를 내지르며 중심을 잃고 말았다. 냄새가 지독하게 코를 찔렀다.

  “여러분 보세요. 인간이 검은 보석이라고 하는 저것은, 우리에겐 보석이 아니에요. 냄새를 맡는 순간 당장이라도 죽음으로 몰아넣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이제 이곳은 우리가 그토록 자부했던 에메랄드빛 터전이 아니에요!” 말을 잇지 못하겠다는 듯 힘찬이가 절규하며 부르짖었다. 

 힘찬이는 계속해서 두통을 앓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두통은 심해졌다.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작은 물고기는 눈이 뒤집히고 숨쉬기가 힘든지 입만 뻥긋거리며 헐떡이고 있었다. 어떤 친구들은 하얀 배를 드러내고 바다 위를 둥둥 떠 나니는 것이 목격됐다.

 유연한 몸놀림을 자랑하던 해파리 떼들은 며칠 동안 시름시름 앓다가 숨을 거두었다. 검은 악마가 그들을 덮친 것이다.
 
거짓말 같은 엄청난 일들이 계속 일어났다. 동화 같은 바다 속을 여행하던 노란 옷을 입은 친구들도, 무지개 옷을 자랑하던 친구들도 귀가 멀었노라고 누군가가 울면서 소식을 전해 주었다.
 
갯벌에 사는 친구들은 손써볼 틈도 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더 큰 슬픔이었다. 그들의 시체 썩은 악취는 파도를 타고 온 바다를 떠돌았다. 통곡소리가 바다를 뒤엎었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바로 여기가 생지옥이었다.

 저녁이었다. 힘찬이는 헤엄치기가 쉽지 않았지만 바람을 쐬러 바깥세상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종종 파랗게 부는 시원한 바람이 수면 위에서 너울 대고 있었다. 힘찬이는 살갗을 간질이는 이순간의 바람과 몇 줌 남은 햇살을 좋아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햇살에 몸을 태우던 모래는 더 이상 모래가 아니었다. 검은 액체 같은 물이 모래의 몸을, 마음을 까맣게 물들이고 있었다. 차라리 해가 빨리 서쪽으로 넘어 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래야 모래가 신음하는 모습을 보지 않을 테니까. 힘찬이는 눈가가 촉촉해 지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아가, 괜찮니?” 엄마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떠난 바다 식구들의 영혼은 언제 돌아올까요? 마음이 아파서 말하기도 힘들어요.”

 “엄마도 마음이 아프구나, 하지만 우리는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야. 저 멀리 해안선에, 바위 사이사이로 하얀 옷을 입은 수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저들은 모두 자신들이 저지른 실수와 잘못을 알고 용서를 구하러 온 게 틀림없어. 그리고 우리와 우리 터전의 소중함을 알고 여기가 생명의 소리로 넘치기를 진심으로 바랄거야. 조금씩 검은 물이 없어지고 있구나! 다행이지 않니?
 
갯벌 친구들도 언젠가는 너의 고민을 들어줄 날이 올 거야. 하루 빨리 우리 모두의 상처가 회복되길 바라고 싶구나. 그쯤엔 너의 두통도 깨끗이 사라지겠지.”

 보드라운 엄마 고래의 품에 안긴 채 힘찬이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뚝뚝 흘러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