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의 한국생활에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있는 가운데 서로 아끼고 배려하면서 국경을 초월한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한 부부의 진솔한 삶이 훈훈함을 더해준다.

화제의 주인공은 군산시 미장동 최인규(50)씨와 그의 필리핀 아내 모랄레스 시시도리(40) 씨.

지난 2000년 종교생활 도중 만나 백년가약을 맺은 이들 부부에게서는 인터뷰 내내 이주여성을 아내로 맞은 낯선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친숙함과 정감이 묻어났다.  

여느 내국인 부부 못지않게 오래도록 곰삭은 듯한 부부의 깊은 속정이 배어 있었다.

낯선 이국땅에 시집와 언어는 물론 생활습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서먹서먹했지만 아내 시시도리 씨의 이런 걱정 근심을 덜어주기 위한 최씨 부부의 노력은 남달랐다.

남편 최씨는 쉬는날 이면 어김없이 아내와 함께 군산시내를 돌아다니며 이정표를 읽으며 한국말과 지리를 알려주고, 말을 쉽게 배울 수 있도록 책도 선물했다.

결혼초기에는 말이 잘 통하지 않아 곧잘 다투기도 했지만, 남편 최씨는 홧김에 이주여성 아내를 쉽게 대해 상처를 줄수 있다고 판단, 다툼이 있을 때마다 자리를 피하곤 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머나 먼 필리핀 땅에서 오로지 나하나 보고 한국에 왔는데 내가 잘해야 되지 않겠느냐?”며 “8년여 동안 연년생 1남2녀의 아이들에게 포근한 사랑과 함께 잘 키워주는 모습을 볼 때마다 흐뭇하고 고마움이 밀물처럼 몰려왔다”고 말했다.

한때 3남매 중 둘째가 심장판막증으로 고생하고, 필리핀에서 딸의 결혼생활을 보러온 친정 아버지가 군산에서 뇌출혈로 쓰러지는 등 이들 부부에게도 고난과 시련이 있었지만 두 사람은 믿음과 사랑으로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했다.

아내 시시도리 씨는 “뇌출혈로 쓰러진 친정아버지를 생각하면 늘 마음이 아팠지만 남편의 따스한 위로 덕택에 모국의 그리움을 달랠 수 있었다”며 "주위 사람들에게 이주여성 가정이라는 표시가 나지 않도록 하기위해 집안일, 아이키우기, 남편 내조에 이르기까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고 말했다.

국적 초월한 부부애를 나누고 있는 시시도리(좌)·최인규 부부

그녀는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미장동에서 나운동 복지관까지 걸어다니는 모습을 본 남편이 어느날 자전거를 선물해 너무 고맙고 감격했다”며 “언제나 한없는 사랑을 베풀어주는 남편이 있어 행복하고, 그 행복을 가족들에게 다시 돌려줘야 겠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군산사람들에게서 친절함을 느낀다"고 말한 시시도리 씨는 "남편의 금연, 자녀들의 건강은 물론 지금 행복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친정부모와 시댁식구와 함께 한 집에서 사는 것이 앞으로의 소원"이라고 말했다.

남편 최씨는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야 말로 언어보다 더 소중한 의사소통의 기초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아내가 한국에서 필리핀과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최대한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키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는 국경을 넘어 부부의 연을 맺은 사람들인데 아직도 일부에서는 아내를 필리핀 이주여성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며 “서로 싸우고 불신하며 생지옥 처럼 생활하는 내국인 부부들을 지켜보면서 참된 부부란 국적 보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배려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곤 한다고 덧붙였다.

최인규·시시도리 부부는 결혼 8년째를 맞고 있지만 지금도 생일이나 발렌타인·화이트데이날에는 어김없이 꽃을 선물하고 애틋한 사랑을 확인할 정도로 잉꼬부부다.

아내 시시도리 씨는 인터뷰 도중 결혼생활하면서 언제가 가장 행복한지를 묻자  “always happy”(항상 행복하다)라고 짧게 답하면서 살포시 웃음 지었다.

이들 부부의 삶이야 말로 ‘다문화가정’이라는 의미가 이제 더 이상 소외계층에 대한 의도적인 배려차원이 아니라 더불어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야할 이웃으로 새롭게 인식되어야 함을 시사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