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펑 눈 내리는 날 한 처녀가 서울역에 있다.
처녀의 고향은 군산이라고 했고 이름은 정순이다.
고은 선생의 만인보에 등장하는 정순이라는 인물은 군산에서 서울로 올라갔다.
서울역에 모인 사람들은 ‘서울은 모든 것을 흡수한다’는 합창을 한다.
전북오페라단(단장 조시민)의 만인보 4편 겨울그림자는 서울로 간 순이로부터 시작했다.
스텝진까지 총 150여명의 연기자들이 출연한 오폐라 겨울그림자는 군산출신 고은 선생의 만인보를 오페라로 각색한 작품이다.
겨울그림자는 지게꾼, 공순이, 공돌이, 아첨꾼, 장발족, 미니스커트 입은 여학생 등 그리 멀지 않은 우리들의 기억 속에 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살벌하기만 했던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경제성장이라는 미명하에 소리 없이 죽어갔던 별 볼일 없던 사람들의 삶을 고운 선율을 통해 보여 준다.
허걸재 지휘자에 따라 흐르는 선율에 맞춰 순이는 때로는 울고 때로는 웃는다.
분노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힘없는 자들의 울부짖음이다.
조시민 단장은 “만인보에 등장하는 인물을 통해 굴곡의 역사이기도 한 70년대를 조명했다”고 말한다.
경제성장과 민주화라는 대립구도 속에서 힘없고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 과거의 모습을 되새기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겨울그림자는 군산에서는 생소한 오페라라는 장르이면서도 고은의 만인보를 소재로 했다는 측면에서 시민들의 관심을 듬뿍 받았다.
군산시민회관 2층 객석까지 자리 잡은 관객들은 순이의 애절한 아리아속에 스며든 절망의 고통을 안타까워 했다.
사자후를 토해내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상진의 죽음 앞에는 분노를 느꼈다.
순이는 하얀 눈속으로 사라져간 사람들을 뒤로 하고 고향 군산으로 내려온다.
오페라를 관람한 시민들은 하나같이 이정도 수준이면 서울에서도 공연을 해도 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시민 이모씨(45)는 “이 정도 수준이면 서울에서 공연해도 정말 손색이 없다”고 지적하고 고은의 만인보가 군산의 문화콘텐츠로서 확실하게 자리매김을 할 수 있도록 과감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 했다.
이길영 기자 (leeglu@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