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살에 미면에서 시집와서 보니까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하고 있었어. 왜정시대 고무공장에서 일하다가 차렸다고 하더라고. 내가 지금 여든 여섯이니까 60년은 더 됐는가봐.”
객사, 동헌, 향교가 있었던 옛 영광을 뒤로 하고 지금은 고즈넉한 시골 풍경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옥구 상평마을, 그 마을 한 켠에 있는 듯 없는 듯 쉽사리 눈에 띄지도 않는 시골 점빵이 자리잡고 있다.
바로 조계숙 어르신이 운영하는 ‘상평상회’로 요즘 웬만한 시골에서도 자취를 감춘 그야말로 자그마한 동네 점빵이다.
이제 계산이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계산기도 안 쓰고 컴퓨터보다 빠르다”고 자랑하시는 어르신, 여든이 넘은 연세가 무색하게 바늘귀에 바늘을 척척 꿰시는 기술을 시연하시는 모습을 보니 그럴만도 하겠다 싶다.
지금도 손 놓고 지내는 것을 못 한다는 어르신은 그렇게 10여 평이 되는 가게를 운영하며 세 아들을 대학까지 보냈다.
“내가 장사하면서 조금씩 폈지. 계 들고 타서 논 사고 또 벌어서 집 사고. 그 때는 내가 운이 있었는가 잘 됐어. 스물다섯에 막내 낳고 여태까지 일만 했지. 6시에 일어나서 10시에 문 닫고. 그대로 나는 촌에서 살면 (논밭)일 하고 살아야 하는데 그래도 편하게 살았지. 아버지(남편)가 착하니 애들도 착했고”
외아들에게 시집을 왔던 지라 소리나지 않게 차분하게 살림까지 도맡아 하며 여태 접시 하나 사발 하나 깨본 적이 없다는 어르신이다.
그렇게 근처에서 함께 장사하던 예닐곱 집이 나가는 동안에도 그리고 동네 점빵들이 신식 슈퍼나 대형 마트에 치여 대부분 사라질 동안에도 점빵을 지키며 “어거지로 살려고 그런 것 없이 그저 순리대로” 살아왔다.
그나마 경로당이 생기기 전에는 마을 사랑방처럼 사람들이 드나들곤 했지만 코로나19다 뭐다 하며 발길도 끊겼고, 인근에 위치한 공단 사람들만이 아주 가끔 가게 문을 두드리곤 한다. 시간도 없고 차도 없어 시내에 나가지 않는 외국인들이 이제는 단골이다.
“동네에 사람이 없어. 그러니까 애들도 이제 그만하고 쉬라고 하지만 나는 쉬고 싶은 생각 없어. 재밌게 해왔는데 아직 괜찮은디 빗자루질이라도 해야지.”
너무도 빠르고, 너무도 화려한 세상이다. 60년 넘도록 한 자리를 지키며 우리네 삶 한 켠을 채워 온 우리 어르신들의 느림이, 진득함이 그리운 시절이다.
